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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이유

by 원정미

실리콘 밸리, 컴퓨터 공학과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한번 살고 싶어 하는 동네이다.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회사들도 많고 새로운 스티브잡스나 마크 주커버스를 꿈꾸는 인재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2-3년 전에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여름이면 이곳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풀타임 캠핑카여행을 간다.


한국에서 어른들이 오시면 날씨만 훔쳐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7-8개월은 적당히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 너무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또 너무 시골 같지도 않은 동네에서 살았다. 사실 코로나 전까지 나는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20년 가까이 너무 익숙했고 좋았던 기억만 가득한 나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가 세상에서 유명해지면 질수록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잘 나가는 전 세계의 엔지니어들이 몰려들었고 덕분에 현금으로 집을 구매할 정도로 부동산은 폭등했다. 그 여파로 집세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다른 것들도 다 같이 올랐다. 식자재값은 물론이고 아이들 교육비 기타 외식비 기름값등이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엔지니어가 아닌 남편과 나의 소득은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가상승률을 우리 가계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20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빠듯하고 허덕이고 있었다. 부족하진 않았지만 남편과 나는 그런 빠듯함이 지겨워졌다.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도 걱정이 되었다. 집세와 물가가 너무 높은 탓에 아이들이 4년제 대학을 나와도 독립하기 어려운 지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미국의 독립적인 문화와 다르게 이 동네에선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거기다 잘 나가는 인재들이 모인 동네이니 그만큼 학구열도 높았다. 명문대를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뛰어나게 특출 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기엔 너무 팍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스스로에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기보다는 너무나 잘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위축되고 비참해질 것 같았다. 아이들을 위해서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 적당한 4년제 대학을 나오거나 기술을 배우면 적어도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덜 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산호제에 오래 살면 살수록 마치 대치동에 살면서도 아이들 학원하나 보내지 않고 키우고 있는 부모 같았다. 그만큼 이 동네가 나의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것이 시간이 누적될수록 피로해졌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정착과 안정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변화나 도전을 싫어하는 나이기에 익숙한 곳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 안정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로 20여 년이 넘는 동안 이사한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요소는 남편과 아이들, 즉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장 안정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굳이 이 집, 이 동네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익숙한 곳을 떠나 용기 있게 풀타임으로 캠핑카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계기가 되었다.


실리콘밸리를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설이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동네의 집값과 물가는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거기다 쾌적하고 화창하고 따뜻했던 날씨는 당연히 그리울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었던 곳이라 아시안이라도 인종차별을 받은 적도 별로 없다. 아마 여행을 다니다 보면 주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와 날씨에 많이 당황하게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 밸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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