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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인 미술치료사까지!

by 원정미

미국에 와서 나는 오랜 나의 꿈을 실현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던 그림을 미국에 와서 다시 시작하고 드디어 서른에 미술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다. 미술 대학원에서 페인팅을 전공하면서 그림이 가진 놀라운 힘을 경험했다. 그림은 나에게 몰입감, 관찰력, 미적감각을 키워주고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의 자아상은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이런 미술의 긍정적 경험을 한 나는 미술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막연하게 미술 치료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듣고 무식하게 Art Therapy학과만 보고 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페인팅을 전공했으니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이라 착각했다. 그림이나 공예만 할 줄 착각했기 때문이다. 'Therapy, 치료'부분을 완전히 간과했었다.


미술 치료 대학원 입학담당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족치료사(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자격증 없이 Art Therapist가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 했다. 미국에선 아무도 너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남겼다.


그녀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가족치료사과정 MFT program과 Art therapy program을 동시에 다 하겠다고 등록했다. 무식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그 후 학교를 다니는 동안 후회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 미술대학 드리고 대학원까지 다녔지만 영어가 능통하지 않았다. 미술대학은 강의수업보다는 실습이 훨씬 많았다. 거기다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들은 나처럼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몇 시간이고 이어폰을 끼고 그림 그리기에 바빴기에 그다지 영어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치료사과정은 심리상담과정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발표, 토론위주였다. 수업 시간은 마치 서로가 말을 하려고 싸우는 사람들처럼 손을 들고 말하기 바빴다. 평생을 살면서 스스로 나서서 손들고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수업시간은 그야말로 진귀한 광경이었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영어도 한참 모자라고 지극히 내향적이고 소심한 나에게수업은 날마다 공포이고 도전이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가 영어로 상담을 배운다는 것은 정말 유치원아이에게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라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매일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너무 내향적이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다는 ㅎㅎ) 매일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고 발표준비하며 내가 고등학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진즉에 서울대를 갔을 거라고 자책했다. 거기다 공부한다고 세 아이 모두 내팽개친 것 같은 죄책감에 날마다 시달렸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는 루저 집에서는 바쁜 엄마, 이기적인 아내였다.



정말 미술공부하며 탄탄하게 만들어 논 나의 자존감이 날마다 바닥을 쳤다. 그만 두지 못해서 아니 그만 둘 타이밍을 찾지 못해서 울며불며 4년 코스를 마쳤다. 그리고 시작된 3000시간의 가족치료사 실습과 1000시간의 미술치료사 실습이 시작되었다. 오늘 실습 5,5시간 어제 6시간.. 매일매일 정확하게 카운트해서 보고하고 기록했다. 이렇게 해서 언제 3000시간을 채우나? 싶었다. 요즘은 한국 군대도 18개월이면 끝난다고 하던데 가족치료 실습만 마치는데 꼬박 3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코로나..

모든 것은 셧다운 되었다. 실습도 무기한 정지

그렇게 또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너무 길었던 실습시간과 예상치 못한 코로나 때문에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사실 코로나 덕분에 책을 쓰기도 했다.) 미술치료사보다 먼저 가족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미술치료 실습은 미뤄둔 채 가족치료사 자격증을 먼저 땄다. 상담대학원이 끝나고 4 년이니 총 거의 8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 덕분에 영어실력이 늘었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상처를 보고 치유했고 확실히 성장했다.


'미술 치료사가 되어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거야!' 라며 호기롭게 내디딘 첫 발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가족치료사 자격증을 따고 코로나를 보내고 난 후에 미술치료 실습을 시작했고 1000시간을 또 꾸역꾸역 채웠다. 처음 미술치료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날로부터 12년이 걸린 셈이다.


미술치료사가 되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또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세월 동안 처음 시작할 땐 계획에 없었던 가족치료사도 되었고 책을 2권이나 쓴 작가도 되었으니 어쩌면 내가 계획한 플랜보다 훨씬 더 나은 방향임은 확실하다. 그래서 인생은 못 먹어도 Go 인가보다.


그 무엇보다 12년 만에 내가 진짜 원했던 일을 딱 마무리한 느낌은 확실히 너무 좋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이고 스스로에게 매우 뿌듯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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