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와 함께 이룬 꿈

by 원정미

캠핑카를 타고 미국을 여행 중이다. 브런치는 내 꿈뿐만 아니라 남편의 꿈도 동시에 이루어주었다.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의 시작은 2020년 코로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5년 전 코로나로 세상이 멈춰버리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던 시절이다. 나는 완벽하지도 않은 영어로 어렵게 상담대학원을 마치고 3000시간의 길고 길었던 인턴시간을 거의 끝내던 시기였다. 미국에서 심리상담 자격증만 따면 아동전문상담가로서 날개를 훨훨 날 수 있으리라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모든 것을 뒤집었다. 대면상담은 모두 화상으로 바뀌었다.


어린아이들과 화상상담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완전한 비밀이 보장되지도 않았고 아이들은 장난감도 게임도 없이 나와 화면으로 오래 대화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금방 바닥이 드러내고 화면바깥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과 기술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았다. 만약 화상상담으로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한다면 나는 못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코로나가 나의 7-8년 동안 쌓아놓은 모든 탑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듯했다.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것을보고 한탄만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 당시엔 직업뿐 아니라 누군가의 생명도 생계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긍정적이었던 남편은 여행타령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놀고 있을 때 여행을 다니면 좋겠다고.. 그런 그의 바람을 가볍게 생각하기만 했다. 코로나가 기한 없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여파는 강력했다. 20년 넘게 친하게 지내던 동네언니가 코로나로 인한 환경의 변화로 갑자기 자살을 하고 또 친했던 동생의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남편의 평생 꿈이었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단 세계여행이 아닌 캠핑카를 타고 하는 미국안에서 한다는 전제였다. 늘 반대만 하던 그의 꿈을 내가 지지하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마냥 불가능하게만 보였다.


20년 가까이 “No”를 외치던 내가 여행을 가자는 말에 신이 난 남편은 갑자기 나에게 책을 쓰라고 했다. 미국 여행을 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책도 팔면서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허무맹랑한 발상에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책이냐며 손사래를 쳤다. 나보다 훨씬 스펙이 좋고 유명한 사람들이 천지고 유튜브만 틀면 육아정보 부모교육정보가 쏟아지는데 나 같은 사람이 쓴 책을 누가 보냐며 비웃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말이다. 남편은 책을 출판하고 파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쓰기나 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작가는 내 인생에 없는 꿈이었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의 경험담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랬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느꼈던 그 불안하고 우울했던 감정들, 이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했던 것이 내 잘못이 아님을 대학원을 다니면서 알았다. 심리치료사가 되고 나서 나의 원가족에겐 알게 모르게 이어져오는 정서적 학대의 대물림이 있었다. 이것을 심리 상담가로서 한 번은 정리하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이왕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상담도 못하고 있고 남편의 말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작정하고 글을 썼다. 그 시간 동안 브런치북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었습니다”를 완성한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는 동안 가장 치유가 많이 된 것은 나였다. 내 아픈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고 기억해 내는 것은 눈물 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심리치료사가 된 나는 좀 더 객관적으로 나의 원가족의 문제를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마음에 자유와 회복을 허락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브런치북이 책으로 나올 꿈은 꾸지도 않았다. 간간히 내 이야기에 ‘너무 공감했다. 내 이야기를 쓴 것 같다 ‘는 답글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했다. 그러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출판사 편집자에게 ‘작가에게 제안하기‘ 메일이 왔다. 내 브런치북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면서.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었습니다” 는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의 틀이 되었다. “너는 책이나 써라”라는 남편의 말이 떨어진 13개월 뒤에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는 탄생되었다.


남편도 나도 그 누구도 내가 책을 출판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내 브런치 구독자수가 많지도 않았고 조회수나 좋아요 숫자도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많은 출판사 편집자님들이 브런치북을 유심히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마치 원석을 찾듯이 말이다. 나 또한 그 혜택을 누린 것이었다.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 ‘는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입소문을 타고 도서관 추천 도서에 오르기도 하고 5월 가족의 달 추천 도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이 책 덕분에 엄마들 대상으로 북토크, 강연 등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어린시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해주는것 같았단 독자들의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없었지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꿈에 가까워지게 도와준 것은 분명하다.


남편은 내가 책을 출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나서 어쩌면 자신의 꿈도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15개월 뒤 나는 한 권의 책을 더 출판했다. 그로부터 또 1년 뒤 우린 캠핑카 여행을 시작했다. 현재 우린 5년 전 남편이 예언한 대로 내가 출간한 책들을 싣고 캠핑카 여행을 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여행의 시작이 나의 책 출판에 있다는 걸을 알고 있다. 그 일의 중심엔 브런치가 있다.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스펙도 화려하지 않은 내가 오로지 나의 이야기로 선택받을 수 있었던 것은 브런치북 덕분이었다. 브런치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나의 꿈과 남편의 오랜 꿈을 이룬 셈이다. 그렇게 브런치는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속 작은 꿈과 소망을 이뤄주고 있다고 믿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