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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몰라봐서 미안해

앞으로 친하게 지내

by 원정미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들에게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외국에 오래 살면 그 나라말에 능통하고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다 꽤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실상은 언어는 그 나라 말을 익히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로 늘지 않는다. 오히려 모국어인 한국어도 까먹고 영어도 늘지 않아서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민자로 먹고살기 바빠 오히려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사람도 있다. 나 또한 미국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 나는 캘리포니아에 가까이 붙어있는 애리조나, 오레건, 네바다주 정도밖에 몰랐다. 언급한 주들도 20여 년 사는 동안 한 두 번 여행으로 들렀을 뿐이다. 아! 뉴욕이나 버지니아가 캘리포니아와는 완전 반대인 동부에 있다는 정도만 안다. 그 정도로 나는 다른 주엔 관심이 없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혹시 관심 있는 곳이 생겨도 차로 열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해야 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더 관심이 사라졌다. 현실적으로 미국 내 여행조차 나에겐 너무나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세도나, 애리조나에서


그런 내가 여행을 시작하고 주로 하는 일이 미국지도와 캠핑장 사이트를 열어놓고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일이다. 구글지도를 펼쳐놓고 미국지도 공부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한 곳 한 곳을 꾹꾹 눌려서 주변의 관광지도와 유명한 관광지도 찾아보고 캠핑장과 캠핑장사이의 걸리도 확인해 보는 사이, 캘리포니아와 뉴욕사이 늘 비어있었던 퍼즐이 머릿속에서 하나씩 채워져 가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네바다,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콜로라도, 텍사스, 뉴올리언스, 아라바마, 플로리다까지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내년 봄까지 가야 할 경로를 미리미리 짜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 것이다. 각각의 주뿐만 아니라 주에서 유명한 관광지와 도시까지 머릿속에서 이미 좌표를 찍고 있다. 그랜드캐년이 어느 쪽에 있는지, 요세미티 위인지 아래인지도 구분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Tuzigoot National Monument. Arizona

더 나아가 캠핑카를 몰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머물렀던 곳은 잊히지 않는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고난과 힘듦을 주었던 러시안 리버도,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었지만 생각보다 좋았던 로스트힐까지 모두 기억에 남았다. 짧게는 2-3일에서 길어봐야 3주 정도 지냈던 곳임에도 이름만 들어도 반갑다. 20년 넘게 살아도 늘 미국과 대면대면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야 좀 친해진 느낌이 든다.


미국에 오래 살아도 나는 미국을 잘 안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미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미국에 20년 넘게 살았다고 미국을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무식한 일이다. 이번에 맘 잡고 미국여행을 시작하고 나서야 이제 미국의 지형과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역시 뭐든지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야 제대로 배우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마치 아무리 한집에 오래 살아도 서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무지한 부부처럼, 나 또한 그랬다. 친밀한 관계의 시작이 서로 알아가는 것이듯, 나도 이제 미국을 알아가고 있다.

Yosemite, California

상대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깝다고 느끼듯이 미국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더 친밀해짐과 동시에 그전에 느끼지 못한 부러운 마음이 든다. 미국은 그야말로 대국이다. 대국이란 의미엔 땅덩어리가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큰 것도 있지만 각각의 주가 마치 하나의 독립된 나라처럼 다른 날씨, 지형, 문화,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런 51개의 나라가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어마어마한 강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미국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야 미국이 왜 축복받은 나라인지 알 것 같았다.


미국 국민들은 해외여행보다는 자국 내 여행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각의 주가 너무나 다른 특색과 문화를 가지고 있고, 거기다 굳이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사막, 바다, 산, 호수, 강 같은 자연환경이 풍부하고 영화나 공연, 엔터테인문화도 발달했다. 그 덕분에 오로라, 등산, 스키, 단풍, 서핑, 유적지, 휴양지, 인디언 문화, 흑인재즈 문화, 멕시코 문화와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 뮤지컬, 음악까지 세계의 중심에 있다. 즉 구경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꿈이 은퇴 후 캠핑카 타고 하는 미국 내 여행인 것이다.


kA show, Las Vegas, Nevada


풀타임여행을 다녀도 절대로 100%의 미국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사계절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 도시를 알고 나라를 알기 위해서도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51년이 걸린다. 하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친해지면 관심이 생기고 더 알아가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지금의 나는 이 방대하고 변화무쌍한 미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생기고 알아가고 싶어졌다. 아마도 이것이 여행이 나에게 준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미국에 대한 내 마음과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생각이 달라지고 마음이 변하는 것, 바로 이것이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고정되어 있고 안주하려는 나의 생각과 태도에 변화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다양한 경험과 자극은 대상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한다. 관심이 없던 대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사랑은 관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마도 이 여행의 끝엔 미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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