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권리도 있잖아
빨간색 지프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새도나 산길을 달린다. 분명 나는 차를 타고 있는데 어릴적 놀던 방방이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떨어질까봐 안전벨트와 손잡이를 죽을힘을 다해 잡고 있지만 나머지 세사람은 신이 났다. 막내딸의 긴머리는 귀신처럼 헝크러져도 아이는 "와~ 이거 너무 재미있어"라고 좋아한다. 나를 닮아 무서운 걸 질색하는 아들도 "지프차는 너무 좋았어요"라고 한다. 이럴때가 여행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다. 이런 순간이 자주 오면 힘들어도 신이나서 여행을 할 것같은데 실상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언제까지 해야 돼요?", "또 사진 찍어요?", "우리 호텔엔 언제 가요?"라는 불평과 불만이 더 많다.
남편이 여행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었다. 때문에 시간과 돈 그리고 엄청난 에너지를 투자해서 이 무모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경험과 동시에 좋은 삶의 레슨이 되길 바랐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또 장엄한 자연 앞에서 많이 성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아이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얼굴에서부터 싫은 티가 났고 좁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사춘기 두 남매는 수시로 싸워댔다. 힘들어도 좀 더 보고 좀 더 경험하고 싶은 엄마, 아빠와 달리 아이들은 빨리 캠핑카로 돌아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하나씩 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온 몸으로 드러냈다..그럴 때마다 "이 고생을 뭣하려 하고 있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어떤 날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구지구지 사춘기 아이들을 끌고 캠핑카 여행을 시작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남편과 둘이라면 훨씬 더 편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우린 집도 팔고 사업체도 팔고 아이들 학교도 모두 홈스쿨로 옮겼다. 이젠 돌아갈 집도 없다. 어쨌든 이 여행은 아이들과 함께 가야 한다. 아이들이 사춘기라는 것도 받아 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매번 멋있는 장소에 들어가고 싶고 아름다운 풍경에선 아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요청에 매번 "거기 나도 들어가야 해요?" "나는 이번에 안 내리고 차에 있을래." "그거 꼭 해야 돼요?"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번번이 거절당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때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이럴 거면 우리 여행을 뭐 하려 하는 거냐?"라며 화를 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도 거절할 권리가 있었다. 물론 살면서 아이들이 꼭 해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은 거절할 수없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관련된 것이라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미 아이들은 여행자체를 울며겨자먹기로 따라가는 것이기에 여행자모드의 삶자체로도 충분히 스트레스가 될 만했다. 거기다 호르몬이 요동치는 사춘기들이니 아침저녁으로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즐거워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길 바랐지만, 남편과 나는 그냥 우리 둘이라도 충분히 즐기자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몰아부치거나 윽박지는 것은 서로의 감정만 상할 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상한 채로 가는 구경이 좋은 추억이 될리가 없었다. 아무리 멋있는 곳을 가고 신기한 걸 보더라도 엄마에게 혼나거나 부모와 싸운다면 그곳은 악몽으로 기억된다. 그곳은 추억의 장소가 아니아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기억은 사실보다는 그때 느꼈던 감정이 더 오래 남기때문이다.
때문에 가급적 사춘기아이들과 마찰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했고 그것은 그들의 거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금의 이 경험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흔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엔 아직 어리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리고 후에 그들이 " 아 그때 제대로 구경할 걸. 아 그때 그걸 해봤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를 하더라도 그것도 그들의 몫이라는 걸 인정했다. 부모는 좋은 것을 제안하는 사람이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존재이니까.
처음엔 여행을 시작할 땐 어쨌든 아이들 위주로 여행을 맞춰주려고 했다. 하지만 어딜 가도 그리 큰 감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남편과 나는 우리가 원하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의 성향은 여전히 고려하지만 그전처럼 모든 비위를 맞춰주지 않기로 했다. 그들에게 선택하고 거절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덕분에 우린 오히려 좀 더 편안해졌다. "엄마, 아빠 저기 가서 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혹은 " 오늘 00이랑 00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가 더 좋으니?"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족했다.
여행을 하면서 24시간 매일 함께 있지만 오히려 심리적으론 아이들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해도 내 제안을 거절해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나와는 다른 독립체이고 다른 존재들이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때 나는 오히려 나의 선택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4인 4색의 객체가 함께 생활하고 여행을 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하지만 각자가 이 여행을 통해서 자기만의 삶의 색깔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 여행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