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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결국 고생을 해야 달라져

by 원정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만의 인생을 찾기 위해 여행을 추천한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여행을 다니고 많은 것을 보고와도 결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늘 궁금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여행은 책은 많이 닮아있었다. 나는 주변에 책을 읽어도 소용이 없더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들의 특징은 책은 읽어도 거기에 적인 한 문장도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본인이 읽었다는 것에만 만족하는 이들이었다. 책을 읽어도 자신의 생각의 틀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책을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함으로 개인의 삶과 일상으로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오히려 지적사치가 되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누군가는 책 한 권으로도 인생이 바뀌었지만 누군가는 백 권을 읽어도 그대로였다.


여행도 비슷했다. 여행을 추천하는 이유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이 확장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알아가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다양성과 유연성을 배울 기회가 생긴다. 틀어 박혀있던 생각의 틀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몰랐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능력이나 취약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삶이 달라진다. 단, 이런 경험은 고생이 동반되는 여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초짜 여행자로서 3개월 내리 길 위에서 살면서 느낀 점은 유명하고 비싼 식당이나 호텔, 남들이 다 가보는 유명 관광지를 가본다고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관광은 확실히 소비적 활동에 그칠 확률이 높았다. 좋은 것을 더 누리기 위해 괜히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Great Sand Dunes National Park. Colorado

대신 그런 곳을 가기 위해 겪는 불편하고 힘든 여정들이 경험이 되고 배움이 되었다. 소위 ‘개고생’을 하는 여행이 나를 바꿀 확률이 높았다. 길 위에서 갑작스러운 문제와 어려움을 만나면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도 내려놓게 되고 자신이 몰랐던 자신의 능력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틀이 깨어지는 경험이 반복되어야 성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남에게 민폐를 주는 상황을 무척 싫어하는 나도 여행 중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자 바로 전화를 돌리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거기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도움도 넙죽넙죽 받았다. 그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하다 보면 내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실상 별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내 자존심이나 체면보다 지켜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낯선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도움을 받게 되면 나도 누군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 또한 누군가의 선행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또 앞으로 이 여행길에 다른 어려움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고생스러운 여행을 다닌 사람은 인간사회가 이런 보이지 않는 선행으로 서로에게 덕을 쌓고 있다는 것을 훨씬 더 깊이 깨닫게 된다.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나아가 비빌 언덕이 없는 여행길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일상에선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던 전기, 물, 와이파이, 샤워실, 화장실 같은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편안하고 편리하게 해 주었던 건지는 없어져봐야 깨달아졌다. 물을 아껴서 한꺼번에 모아서 설거지를 하고 전화 한번 하기 위해 캠핑장 사무실까지 걸어가고, 먼지를 날리며 샤워장을 오고 가고, 냉장고가 고장 나 식재료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 경험들이 있었기에 오늘 하루 누군가 다치지 않고, 무언가가 부서지지 않고 고장 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린 감사했다. 아마 여행자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Telluride. Colorado


이 여행을 통해 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용기였다. 두려움이나 불안은 실체가 없을 때가 많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머릿속으로 상상할 때 오히려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여행을 다니면 생기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다 해결가능한 것들이었다. 걱정과 불안은 내 머릿속에 있을 때 가장 힘이 센 괴물 같았다. 나를 삼킬 듯이 거대했지만 사실은 안개에 불과했다: 안갯속을 돌진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행에서 만나는 어려움이나 힘듦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덕분에 예전엔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지레 겁먹고 포기했던 것들을 이제는 '한번 해보지 뭐' '미리 겁먹을 건 없잖아'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여행하기 전보다 용감해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절대로 내가 익숙한 상황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늘 처음은 힘들었고 걱정스럽고 두려웠지만 궁극적으로 나에게 득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과 행동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는 것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나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가 더 중요했다. 여행이 주는 특별함은 유명한 곳을 가고 멋있는 것을 보는 것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편안한 삶을 떠나서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 생기는 예측불허의 상황과 크고 작은 문제들이 비일비재했고 그 가운데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다듬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런 과정은 절대로 안락하고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오히려 일상의 소중함을 경험하고 삶을 다양성을 바라보고 도전이나 문제 앞에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 것은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이 여행은 나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Forest Gump Point. Utah

여행 초반에 너무 힘들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큰 딸에게 전화로 한참 하소연을 했다. 캠핑카를 끌고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하고 뭐가 깨지고 부서지고 등등 그랬더니 딸은 “ 그러게 엄마 ~ 왜 여행을 한다고 했어. 하지 말지.”라고 했다. 그때 ” 그런데 엄마는 힘들어서 여행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아. 힘드니까 아마 엄마가 엄청 배우고 성장할 것 같아 “라고 말했다.


인생 후반을 시작하면서 그리고 사람과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힘들고 고생스러워야 성장하고발 전한다는 것이었다. 쉽고 편안한 길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키운 적은 없었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도, 그림을 배울 때도, 영어를 배우고, 논문을 쓸 때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도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늘 하기 싫었고 힘들었고 오래 걸렸다. 때문에 그 선택을 한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지루하고 힘든 과정을 지나서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졌을 때, 나는 확실히 훌쩍 커있음을 느꼈다. '그때 미술 안 때려치운 게 정말 다행이야, 미국에서 영어 안 배웠으면 어쩔 뻔했어. 당신 만나 애들 낳고 키운 게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거지'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알고 있다. 생각보다 힘들고 고된 이 여행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여행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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