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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은 없어

각자에게 중요한 것은 다 달라

by 원정미

다들 한참 자고 있을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3시에 애들을 깨워 차에 겨우겨우 욱여넣은 후 한 시간을 달렸다. 새벽 4시에 우린 뉴멕시코의 어느 한 쇼핑몰로 향했다. "정말 여기에서 셔틀 타는 거 맞아?" 남편이 의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겠지. 인터넷에 그렇게 나와 있었으니까. 자기야, 나도 여기 처음이야.”생각보다 너무 큰 쇼핑몰이라 어디에서 셔틀을 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새벽 4시에 드문드문 차가 보이는 것이 분명 셔틀을 타러 온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마침 차를 타고 지나가던 security 가이드가 있어서 물어본다. 그녀가 직접 운전해서 길을 가르쳐줬다.


우리가 도착한 주차장을 좀 벗어나 반대쪽 주차장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마어마한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거기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줄을 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토요일 새벽 4시에 말이다. 바로 뉴멕시코 Hot air balloon fiesta를 보러 가기 위해서다.


뉴멕시코의 Ballon fiesta는 세계에서 가장 크게 하는 열기구 축제이다. 일주일동안 하는 이 축제는 거의 뉴멕시코의 상징이자 큰 수입원이기도 하다. 때문에 뉴멕시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집채만 한 크기의 수백 개의 형형색색의 열기구가 동시에 부풀어 오르고 하늘로 올라갈 때 장관을 이룬다. 당연히 사진작가, 여행가들이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이 축제도 '모든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혹은 '버킷리스트를 이루세요!"라는 문구로 홍보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10곳",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 20가지"등이란 표현을 하면서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광고를 한다. 하지만 정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 있을까?

각양각색의 열기구들

이런 표현은 유명한 관광지나 음식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정말 죽기 전에 이런 곳을 가보지 못했거나 진귀한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땅을 후회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죽음 앞에선 사랑하는 사람과 소소한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이나 어렸을 때 해주신 엄마의 집밥이나 고향의 맛이 더 그리워지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여행이란 여러 가지 운이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일단 몸이 건강해야 한다. 정말 돈이 많아서 비서를 고용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운전을 하든 대중교통을 이동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신체조건이 동반되어야 한다. 생각보다 오르막과 내리막 같은 비탈길을 갈 때도 많았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곳들도 많았다. 적어도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신체조건이 되어야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두 번째 꼭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돈이 필요하다. 여행의 목적이나 방법에 따라서 얼마든지 적은 비용으로도 여행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숙소, 기름값, 식비, 입장료등을 충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는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여행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건강하고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 중에 장기적으로 아픈 사람이 있거나 혹은 돌보거나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다면 시간을 뺴는 것이 가장 힘들다. 특별히 정기적으로 출근을 해야 하거나 아이가 있는 가정에선 주말 하루 빼는 것도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가 걸리는 여행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여행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아떨어지는 소위 '운빨'이 따라줘야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낀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 아름다운 곳에 가보고 싶고 맛있는 거 먹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과 처지에 놓여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죽기 전에 여긴 꼭 와봐야 해" "이런 것도 못 먹어봤어?"라는 말의 표현을 가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해봐야 할 000"이란 말이 싫다. 이런 말들 때문에 괜스레 개인의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여행을 하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곳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무척 감사하다. 어쩌다 운 좋게 이곳에 와서 이런 장관을 보고 있을까 싶다. 하찮지만 그래도 아프지 않은 몸뚱이, 투덜거려도 곧잘 따라와 준 아이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책임을 질 필요 없는 양가 부모님들, 그리고 딱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준비한 남편 덕분이다. 거기다 날씨까지도 완벽히 맞아야 한다. 이번 뉴멕시코 열기구 축제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취소가 되는 행사였다. 그날 날씨가 허락하지 않았으면 아무리 내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어도 볼 수 없었다. 어떤 곳은 너무 더워도 안되고 어떤 곳은 너무 추워도 갈 수가 없다. 날씨야 말로 그날 운에 달려있다.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여행의 순기능이 아닐까 싶다.

열기구를 띄우기 위해 준비하는 중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며 다양하고 아름다운 경험하길 바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여긴 죽기 전에 꼭 와봐야 해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름답다" "멋있다" 혹은 "맛있다. 맛없다"같은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스카이 다이빙은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인 것처럼 각자에게 좋은 것의 의미는 다르다. 이처럼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 많다. 따라서 함부로 이건 '무조건 좋아. 무조건 맛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여행을 너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 게다가 유명한 관광지를 간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관광지에 오지 않더라도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못 박아두고 싶다. 죽기 전에 남들이 다가는 곳을 가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그것과 상관없이 각자 맡겨진 인생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애리조나의 그랜드캐년이나 콜로라도의 마룬벨, 뉴멕시코에서 열기구 축제처럼 나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을 마주할 때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났다. 멋있는 곳 아름다운 곳은 TV에서 보는 게 좋다고 외치던 나였지만 역시 현장에서 보는 놀라움과 경이감은 영상이 다 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장면을 목도할 때마다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온 큰 딸이 생각나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산호제에 계신 시부모님이 생각났다. 함께 있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꼭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 까지였다.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괜찮다. 내 인생에 이런 운이 다시 따라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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