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나를 찾아서
“와~ 여기 너무 멋있다. 우와! 저기로 가보자!”
“아빠! 엄마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 엄마가 이상해. 우리 엄마가 아니야~”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죠수아 트리 국립공원에 도착해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고 사진을 찍느라 정처 없이 공원 안을 싸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평소엔 나가는 걸 하도 싫어해서 시장보는 것도 아빠에게 시키는 엄마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신이 나서 돌아다니는 모습에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나는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피곤하고 귀찮아도 멋진 풍경이나 아름다운 장면이 보이면 눈이 반짝 뜨이고 힘이 났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일상에선 이런 순간을 만나기 힘들어서 아이들은 잘 몰랐던 것이다.
스스로 몰랐을 뿐 내 삶에서 미적 아름다움이 무척 중요한 사람이었다. 옷을 사더라도 기능보다는 디자인 나 색감이 중요했다. 놀이동산에 가더라도 놀이기구보다는 조경이나 주변 디자인들 눈에 더 들어왔다. 동물원에 가더라도 정작 동물보다는 주변에 특이한 꽃이나 식물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때문에 좋아하는 계절도 꽃이 만발하는 봄이나 알록달록 단풍이 드는 가을을 좋아한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래서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좋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던 미술을 미국에 와서 공부할 때 얼마나 신이 나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 드러내놓고 살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솔직한 내 감정을 드러냈다가는 비난이나 질타를 받기 십상이었다. 늘 내 마음을 숨기고 억압하기 바빴다. 때문에 나는 나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결혼 후엔 미적감각보다는 기능이 제일 중요한 남편을 만났다. 그에겐 싸고 튼튼하고 실속 있는 게 최고였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나에겐 인테리어를 고를 때나 물건을 살 때 그리 큰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도 남들이 보기에도 평범하고 무던하고 무난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평소엔 보지 못했던 자주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내속에 있던 미적감각을 자극하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눈에 담고 사진으로 남기느라 무척 바쁘다. 남편과 아이들이 평소에 잘 보지 못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길 위에서의 삶은 절대로 쉽지 않다. 편안한 삶을 원한다면 하지 않는 게 낫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도록 도와주는 길임은 확실한 듯하다. 통제불가한 길 위에서의 삶은 안정된 생활에선 느낄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그 감정들이 ‘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감정이야말로 개인이 느끼는 가장 주관적이고 독립적이고 사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 나는 이런 상황을 무척 싫어하네/ 좋아하네”
“ 아.. 나는 이런 문제에 화가 나네/ 잘 해결하네. “
“이런 음식/ 문화를 즐기네/ 별로네” 등등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의 반응이 천차만별이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감정이 된다. 따라서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게 해 주는 여행이야 말로 자신을 알아가기 딱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잘 살기위해 여행을 자주 해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주로 피곤함, 당황스러움, 당혹감, 황당함, 불안함등이 많았지만 성취감, 뿌듯함, 경이로움, 감사함, 호기심, 만족감등도 느낀다. 이런 버라이어트 한 감정 속에서 몰랐던 나를 만나고 알아가게 되는 거 같다. 점점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아름다운 풍경과 경이로운 장면에 기대가 되고 있다. 이 여행의 끝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