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사이좋게 잘지내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가 출간된지 3년이 넘었다. 3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가끔식 브런치답글이나 개인 이메일 혹은 출판사로 책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남기시는 분들이있다. 3년이나 지났으니 이젠 내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라는 포기의 마음이 들다가도 이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아직 누군가가 내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다. 나의 가정사를 오롯히 밝혀야 했던 그래서 너무 힘들었던 집필과정이었지만 책쓰길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
편지의 내용들은 신기하게 하나같이 전부 비슷하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혹은 작가님 덕분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상처를 회복하신 것만으로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걸 배웠다.' 등등이다. 그리고 후반부엔 또한 비슷한 어려움등을 토로하신다. ‘마음으론 알아도 여전히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를 대하는게 어렵다는 것이다. 여전히 마음이 들끓거나 주눅이들어서 힘이들고 잘지내는 것이 어렵다’는 내용을 덧붙이는 분들이 많았다.
많은 분들이 책이나 강의등을 듣고 크게 위안과 공감, 깨달음을 받으면 내 마음의 변화가 ‘ 즉시, 당장“ 일어나서 관계가 단박에 좋아지리라 오해하시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이나 강연 혹은 상담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 위로, 깨달음은 생각과 감정의 변화이다. 문제는 이 생각과 감정의 변화는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마치 화장실 들어 갈때와 나올때의 내 마음이 바뀌듯이 감정은 늘 변한다. 사람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개인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 즉 행동에 달려있다. 이 행동은 습관이 되어야 변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람은 스스로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절제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남을 통제할 수 있을까?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대, 특별히 나에게 상처를 주고 여전히 나를 쥐고 흔드는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님들의 대부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작정을 하고 한 행동들이 아니다. 대부분의 순간들은 그들의 기억속에서 이미 사라졌다. 거기다 몇십년째 습관이 되어 있는 어른들의 가치관, 태도, 발버릇, 생활습관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즉 심리상담에서 개인의 상처를 회복해야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상처를 준 부모 혹은 당사자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럼 왜 나의 상처를 회복해야 할까?
개인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야하는 것은 1. 나의 소중한 시간을 상처받은 시간을 곱씹으며 원망하거나 비난 혹은 스스로를 경멸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고 2.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낮아진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이며 3. 나에게 상처준 사람에게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다는 결심이자 의지이고 4. 나의 상처로 인해 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상처를 치유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아버지와 잘지내고 싶은 마음때문이 아니었다. 상처때문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열망은 내가 진짜 원한 삶보다 부모님이 좋아하실만한 일을 하려고 했다. 인정과 사랑에 대한 결핍은 나답게 사는 것을 방해했다. 내안에 숨어 있던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은 늘 다른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깍아먹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안의 해결되지 않았던 상처 때문에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오해하고 비난하고 탓했다. 그렇게 내 삶을 함몰시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프고 힘들지만 내 상처를 들여다 보고 치유하고 회복하기로 선택했다.
그 과정은 절대로 쉽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어쩌면 여전히 진행중이기도 하다. 나의 과거를 직면하고 인정하기까기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안에 가득쌓여있던 어린시절 들었던 비교, 비난, 협박같은 말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뱉지않기위해 죽을 힘을 다해 참았다. 타인에 대한 불신, 과도한 불안,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어린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립하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과 노력덕분에 과거 상처로 부터 많이 자유로워졌다. 상처로 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내 상처로 인해 다른 2차 3차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온전히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찾았다. 과거의 아픔이 더이상 나의 약점이나 열등감이 되지 않는다. 예전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던 감정의 소용돌이도 많이 사라졌다. 나는 과거 부모님과는 다른 더 긍정적인 말투와 태도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있다. 덕분에 내가 선택한 가정에서 내가 원한 가정의 모습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더이상 부모님의 인정이나 타인의 사랑을 갈구해야 살 수 있었던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가 그 누구보다 나를 잘 돌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때문에 지금은 회복의 과정을 포기하지 않은 나를 칭찬하고 싶을 만큼 잘했다고 생각한다.
책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아직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알콩달콩한 부녀지간처럼 지내지 못할 뿐이지 아버지를 여전히 미워하거나 싸우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적당한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지낸다. 30-40년전과 거의 바뀌지 않은 아버지와 5분이상 대화를 하다보면 나는 또 상처를 받게 된다. 한두번은 그려려니 넘겨도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또다시 나의 상처가 덧나거나 언성이 높아졌다. 나는 이 지겨운 사이클을 멈추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택한 방법은 아버지와 거리두기였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회복한다는 것을 부모와 관계회복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통사고로 내 다리가 부러졌다면 나는 부러진 다리가 온전히 다시 회복되기 위해 치료를 받고 재활에 집중한다. 자신의 다리에 집중하지 않고 사고를 낸 가해자와 잘 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내 상처를 회복한다는 것은 내가 나답게 건강하게 나의 삶을 살기 위함이 먼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