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by 원정미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언 10:12)


제가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마음의 고통들과 관계의 어그러짐을 주로 호소합니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모두 궁극적으로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살면서 건강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의 부재나 미성숙한 양육태도나 방임 혹은 방치로 자신이 받아야 하는 돌봄이나 사랑을 받지 못한 분들입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성장한 후에도 타인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사랑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거나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내면의 사랑이 부족한 경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타인의 지나치게 의식하며 착한 엄마, 착한 성도, 착한 사역자가 되려고 합니다. 아니면 반대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연결되는 것을 지나치게 어려워하는 회피적 사람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잘못된 사랑을 서로 간에 주고받는 경우입니다. 본인은 사랑이라 주장했지만 실상은 상대에게 집착과 협박 혹은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은 병들고 관계는 깨어집니다. 한쪽은 사랑이라 했지만 상대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두경우 모두 다 결국 사랑의 부재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벨 훅스는 최고 명문대학을 나온 지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마음의 불안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이 전적으로 사랑에 대한 무지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미디어나 세상이 외치는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올어바웃 러브’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듣고, 말하고, 쓰고 있는 사랑이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 보이는 첫눈에 반해 평생을 순애보처럼 한 사람에게만 매달리는 사랑을 기대하거나 늘 달콤하고 열정적인 감정이 사랑의 전부라 착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이런 것이 사랑이라 믿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에 대한 착각이 인간관계를 꼬이게 만들고 마음을 불안하고 공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을 쥐어짜면 이 구절만 남는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39절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구절을 언뜻 보면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 2명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3명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요. 마지막이 이웃 사랑입니다. 사랑의 순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그 이후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순서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아서 사랑이 늘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포기가 근간이 기독교 신앙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마치 말씀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차고 넘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 사랑이 차고 넘치지 않으면 이웃에게 절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 흘러넘치는 사랑을 경험한 자만이 자기 포기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깨달아 느낀 자만이 보잘것없는 자신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목숨처럼 쥐고 있는 것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이 보일 때 내 손에 잡은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교회 안과 밖에서 무척 많이 만납니다.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

랑하려고 하니 힘든 것입니다.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가족과 이웃을 품어보려고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도 사랑에 3가지 종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아가페 (참사랑), 필리아 (우정, 형제애) 그리고 에로스 (남녀 간의 애정)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은 남녀 간의 뜨거운 에로스적 사랑만이 사랑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랑을 어떻게 노력하느냐?” “ 사랑에 빠진 걸 어떡하냐?”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에로스를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은 원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버려 우리를 자녀 삼으신 사랑입니다. 이 참사랑은 죄인인 우리를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까지 성장시키는 사랑입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이자 기독교 정신과의사였던 스캇펙 박사는 그 참사랑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돕는 행위”로 설명했습니다. 이사랑은 하면 할수록 개인이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스캇펙 박사님은 사랑은 감정에 빠지는 유혹의 수준을 넘어선 의지와 실천이 동반된 행동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려는 대상에 대해 관심과 이해 그리고 책임감으로 묶어진 행동입니다. 사랑한다고 입으로 외치면서 아무것도 행하는 않는 자는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셨습니다. 감정에 상관없이 나와 타인에게 선한 것을 행하려는 의지와 책임감이 동반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단점과 부족함만 보이는 나를 인정하고 잘 돌보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배우자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 사랑이고, 반항하는 자녀를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 개념에 따르면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오히려 "나는 이제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하고 결단했다"는 표현이 맞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이 참사랑이 실천될 때 선행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나 같은 자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격스러워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그분께 온전히 맡기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깨달으면 내 안에 사랑이 넘쳐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적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의 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을 비하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을 무척 많이 만납니다. 자신의 감정을 읽을 줄 도 모르고 표현할 줄도 몰라고 무조건 억압하고 억누르기만 합니다. 열심히 종교생활은 하고 있지만 마음에 평안도 기쁨도 없습니다. 자신을 잘 사랑하지 못함으로 궁극적으로 나를 둘러싼 관계도 망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것이 너무 안타까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사랑하신 그대로 내게 주어진 모든 것 , 외모, 능력, 환경, 배우자, 자녀, 돈, 시간, 내 약점, 감정과 생각까지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최선의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안에 있는 자기 비하, 열등감, 교만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참사랑은 실천하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받은 자라는 깨달음과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외치는 사랑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중에 아주 작은 일부분 일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큰 사랑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먼저 회복하시길 소원합니다. 그 길이 나를 살리고 우리 관계를 살리는 순서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먼저 나를 통해 흘러나가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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