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격입니다

by 원정미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 4-7절)


앞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이 고린도후서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사랑장이라 불리는 고린도후서 13장을 보면 사랑의 행위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소극적 의미 “---하지마라”와 적극적 의미의 “-----하라” 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각자가 주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정체성이 확고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마라” 의 구절에 나오는 시기, 자랑 교만, 무례함, 자기 유익, 분노, 악, 이 모든 것은 비교에서 시작하는 열등감 혹은 교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내가 옳다. 내가 너 보다 더 낫다’라는 생각이 교만하게 하고, 무례하게 하고 분이 나게 합니다. 더 나아가 남들 보다 더 빨리 성공하고 더 잘나가고 싶은 욕심에 악한 방법이나 불의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열등감과 교만은 마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뿌리에서 시작합니다. 바로 비교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남들과 비교해서 못났다고 느끼면 열등감을 느끼고 반대로 남들보다 낫다고 느끼면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때문에 열등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교만하기 쉽고, 교만한 사람들이 열등감도 잘 느낍니다. 내 안에 사랑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사랑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은혜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비교에 취약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보다는 늘 타인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기에 나에게 없는 것만 보입니다. 이미 나에게 충분히 부어주셨음을 볼수 있는 영안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고 감사할 거리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어주신 은혜를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사랑의 적극적 의미의 “---하라”는 훈련과 의지의 결과로 나타나는 성품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드리고 기도만 하면 자동적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착각입니다. 그래서 더 예배와 기도에만 집중합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고 기도'만' 한다고 성품이 바뀌지않습니다. 성품은 나의 태도이고 행동이기에 노력하고 연습해야 달라집니다. 매일 새벽기도는 성실히 가지만 배우자와 자녀를 향한 비난의 언어를 바꾸지 못한다면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집입니다. 예배와 기도는 나의 생각, 말과 행동이 주님앞에 합당한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내가 고쳐야 할 것이 있고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순종인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기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기뻐하며 참아주고 믿고 견디는 이 모든 행동은 감정의 결과가 아닙니다. 참아주고 싶을 때 참아주고, 온유할 수 있을 때 온유해지고 기뻐하고 싶을 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사랑의 정의처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기에 주님이 함께해주신다 약속하신 것입니다. 100번을 실패해도 101번째 다시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그때 우리의 인격이 주님을 닮아갑니다. 이 지속적인 사랑의 훈련으로 미성숙하고 부족한 우리의 허물을 성화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게 합니다. 혈기왕성한 모세를 온유의 사람으로 교만한 사울을 사랑의 사도로 변화시킨 모든 고난과 훈련은 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첫번째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이땅에서의 성도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나에게 잘해주고 내 말을 잘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악한자도 그렇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까지가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감정이 아닌 의지와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서로의 유익과 성장으로 귀결됩니다. 은사의 목적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성령의 은사중에 가장 큰 은사인 이유입니다. 나의 사랑으로 인해 시들어 간다면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형태의 중독, 가정폭력, 학대 등을 방관하고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서 부모의 뜻과 욕심으로 이끌고 가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분열하게 하고 당파를 짓는 것은 사랑이 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엔 회복,성장과 성숙이 함께 합니다.


네 번째 참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비록 상대가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사랑이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선교사들과 목사님들이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했지만 지금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사랑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으로 행한 일이 늘 세상에서 인정받고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사랑받은 자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전하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반사시켜 세상에 비춰주는 거울일 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받은 자'라는 자기 정체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처절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사실 반사할 빛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 사랑을 평생을 두고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너무 형편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원망하고 탓하기 전에 내 안에 흘러 넘치는 사랑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보고 배운 사랑은 때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성도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닮아가길 원하시는 사랑은 절대로 변덕스럽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반드시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그 사랑안에 굴복하여야 진정한 사랑을 깨달고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회복이고 영적회복이 개인의 마음의 병과 괴로움에서 자유하게 하며 가족과 공동체를 살리는 길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진짜 사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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