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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Oct 06. 2021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올해로 만 18세 성인이 된 딸은 다음주에 몬트레이에 가서 일박을 한다고 했다. 우리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몬트레이는 바닷가 근처라 유명 해양 박물관이 있다. 큰 딸이 어릴때도 자주 방문했던 곳이지만 딸이 자라면서는 잘 가지 않았다.  7살, 11살 터울이 나는 동생을 때문에 우리 부부는  몇 년 전까지 자주 애용했지만 큰 아이는 번번히 가기 싫어 했었다. 그런곳은 이제 유치하다면서.


그런 큰 딸이 친구들과 이번에 그 해양박물관을 간다는 것이였다. 우리가 놀라서 쳐다보니, 한다는 말이 " 나 박물관 좋아해!" 라고 하는 것이였다. 남편이랑 기가차서 서로 쳐다보았다.  남편이 " 박물관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친구들이랑 가니까 좋겠지" 라며 했더니 " 그런것 같아~" 라며 웃었다.


우리랑 갈때는 번번히 퇴짜를 놓더니 친구들이랑 갈생각에 신나해 하는 딸 모습이 얄밉기도  했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랑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니까.

사실 나는 겁도 많고 도전하는 것도 싫어해 낯선곳에 가는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시절 스스로는 알아서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때문에  안전한 것을 선호편이다. 가던 길로만 다니고 먹던 것만 먹고 하던 것만 하던 아주 안전지향적인 사람이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이 남편과 아이들만 있으면 어디든 갈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장소나 환경이 나의 안전지대가 아니라 가족이 내 안전지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있는 곳도 불편하고 싫은 사람이랑 가면 좋은 기억이 없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불편한 사람과 먹으면 고역이 된다. 그건 내 감정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평범한 장소도 평범한 음식도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특별한 추억이 된다. 그때의 감정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녀들이 집을 떠나 방황하거나 문을 걸어 잠그는 이유는 집이 싫어서가 아니다. 함께 하는 누군가가 불편하고 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이다. 배우자가 늦게까지 방황하는 이유 중엔 집자체의 문제 보다는 가정안에 자신의 자리가 없거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함께 있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편하게 대하고 서로간에 소통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좋은 추억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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