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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 therapist Oct 09. 2021

예쁜 딸, 사랑하는 내 딸

미국에 사는 나는 부모님과 화상통화를 자주 한다.  지금 과학의 발달로 전화나 편지가 아닌 얼굴을 보면서 말할수 있는 시대가 된 것에 나는 무척 감사한다. 만약 화상통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면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무척 그리워하면 살았을 것 같다. 얼마전에도  엄마랑 화상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으시는 엄마가 평생 하지 않으시던  " 아이고 우리 딸, 예쁜 딸이네 너무 예쁜 우리 딸이네" 라며 받으시는 것이였다. 내가 너무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니 엄마가 어릴 때 키우면서 이쁘다, 아이고 내 새끼, 예쁜 딸이라는 말 한번 못해주고 키운 게 너무 미안해서 이제라도 한다는 것이였다.


( 중졸이라는 열등감이 평생  엄마를  괴롭히다가 나이 오십에 검정고시를 치시고 사회복지학과를 가셨다. 거기서 아버지와 당신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하셨는지 배우시고 한동안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셨다. 그리고 난후 가끔 엄마는 마치 어린애를 다시 키우듯 나를 대하셨다.)

엄마의 그 말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실 어릴 때 한 번도 엄마나 아빠에게 우리딸, 예쁜딸, 내새끼 이런 다정한 소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삼촌이 발로 빚어도  얼굴보다는 잘 만들겠다며  모과라며 놀리기가 일수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부터 못생겼다는 소리만 너무 듣고 자라 한동안은 외모 콤플렉스에 괴로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커가면서 외모는 조금 나아지기도 했고,  이젠 40 대중에  마누라가 젤 이쁘다고 봐주는 남편과 살면서 여러 가지 열등감을 잘 극복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엄마의 그 말에 눈물이 와락 쏟아졌는지 나도 너무 당황했다. 아마도 세상 모두가 나를 보고 예쁘다 칭찬해 줘도 내가 그 말을 가장 듣고 싶었던 사람은 엄마였던것 같다.


나이가 중년이 넘어서도 나는 부모의 사랑과 인정이 그리웠나 보다. 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원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론  죽어라 공부하고 돈을 벌기도 하고 때론 죽어라 반항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나를 한번 쳐다봐줄까 싶어서이다. 나도 한때는 착한 아이가 되어 그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착한 아이는 당연한 아이가 되어 부모님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그래서 난 무슨 수로 부모의 인정과 관심을 받아야 하나 좌절했던 기억도 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고해성사(?) 화상통화는 모녀의 눈물바람으로 시작했지만, 참 힘든 시절 모두 잘 버티고 이제는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에 감사하며 마무리했다. 엄마의 갑자스런 고백에 제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 표현이 인색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는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사랑에 굶주린 아이로 만들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자주 " 아이고 우리 예쁜 딸, 멋진 아들"이라고 꽉 안아줘야지라고 다짐하게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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