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선택적 함구증으로 나에게 상담의뢰가 왔었다. 보통 선택적 함구증은 유치원이나 1-2학년 학생들에게 의뢰가 많았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이 집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 입을 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S는 이미 5학년이나 되었다.
담임 선생님말에 의하면 4학년에 전학을 왔는데 1년이 넘도록 친구한명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가장 조용한 아이이며 선생님이 물어보는 질문에 예 아니오 정도로만 답한다고 했다. 공부가 크게 뒤쳐지는 것은 아닌데 선생님은 특별히 작문과 사회성부분이 많이 떨어진다며 염려했다. 한마디로 학교에서 자신을 전혀 표현하지 못했다.
S의 부모는 아시아권 나라에서 이민을 온 가족으로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모면담을 잡는데도 애를 먹었다. 통역을 해줄 사람까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S가 집에서도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는 자신들의 모국어로 말하고 아이들은 영어로 짧게 답한다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대화가 깊을 수 없었다. 그러나 S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는 잘 소통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S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고 게임을 하면서 쉽게 흥분하고 감정조절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가 상대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게임을 줄이게 하고 싶으나 이미 S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걱정했다. 형제가 있었지만 둘은 게임할때만 서로 잘 지낸다고 했다. 그 외에는 서로 대화를 하거나 함께 노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했다.
어머니와 짧은 대화만으로도 S는 게임중독 현상을 보이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어 보였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구와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는데 온라인상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너무 재미있게 소통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게임을 줄일수 없는 것이다. S에게 온라인 게임은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미국은 이민가족들이 워낙 많아서 가족안에 이런 소통의 문제가 종종있다. 어릴때 부모의 언어를 곧잘 하던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영어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부모나라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모가 영어를 못할경우 언어장벽으로 인한 문화적, 정서적 벽이 높아져서 부모자녀사이에 깊은 단절을 만드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그래서 언어는 너무 중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같은 말을 쓴다고 모든 사람이 소통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가정안에서 분명히 같은 한국말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벽하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일 들때가 많다. 소통이 전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은 괴롭다. 인간의 평생의 여정은 나와 진정한 소통이 되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 그것이 배우자나 연인이 될수도 있고 자신의 커리어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높은 이혼율과 자살율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소통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S는 상담을 심하게 거부했다. 선생님과 내가 오랜시간 공을 들여 상담을 온날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 쓰고 내 사무실로 들어 왔다. 나의 질문에 예 아니오 혹은 침묵으로 답했다. 나는 사실 너무나 예상하던 바이기에 S 가 최대한 상담실을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나의 일차 목표였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제 시간에 나타나 준다면 그것으로 성공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S는 특별한 일 없는 이상 상담실에 규칙적으로 왔다. 언제나 후드모자를 뒤집어 쓴채로. 그리고 나와 별말 없이 어떤 날을 카드게임을 어떤 날은 블럭게임을 하다가 갔다. 나는 S에게 학교에 자신이 편안하게 여길 장소가 하나있기를 바랬고 또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누군가와 사람대 사람으로 연결되는 것이 그리 나쁜 경험이 아닌 것만 느낄 수 해주는 것이 나의 상담의 목표였다.
기본적으로 사회성 불안이 있는 아이들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나 또한 사회성 불안을 경험했던 사람으로 S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없었다. 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S는 내년에 중학교를 가야했다.
나는 S의 어머니에게 S와 집에서 할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을 찾아서 함께 하길 권했다. 그리고 이웃이나 학교에서 한 두명이라도 S와 함께 놀수 있는 친구를 만들 수있게 도와주시라 부탁했다. 또한 가능하다면 중학교에 가서도 반드시 상담을 계속 받게 해주길 조언해 드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S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냥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일 뿐이다. 학교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학습능력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담사입장에서 S는 위험군에 속한다. 왜냐하면 S의 불안도가 높은 수준인데다가 그가 누구와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고립은 언제나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확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 정서적 외로움을 S는 게임으로 달래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중독으로 빠질 확률도 매우 높았다.
지금의 현대 사회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에 있는 누구라도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환경 같아 보이지만, 사실 오히려 실생활에선 불통이 더 심해지고 있다. 누군가와 술을 마시지 않고 게임을 하지 않고 SNS를 하지 않고, 얼굴을 마주보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 어색해진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선 나를 온전히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서로가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관계는 함께 있어도 외롭다. 그래서 가족끼리 함께 살아도 외로운 것이다.
학교가 방학을 맞으면 상담사들은 보통은 마음이 홀가분해 진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보다는 집을 더 좋아하기 떄문이다. 아이들도 방학동안 많이 좋아지는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S의 상담을 종료할땐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마음이 여젼히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S가 생각난다. 지금 고등학생쯤이 되었을 S의 마음문을 그동안 누군가 열어주었길, 그리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소통을 하며 지내길 하는 바램이 제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