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Jun 03. 2021

엄마와 '너무 좋은' 여행

나도 '너무 좋아'

 아침부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졌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쿠쿠궄구ᅟ궁ㄱ쿠ᅟ국쿠 하늘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에 서서 어떤 신발을 신고 나가서 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엄마랑 오랜만에 여행 가는 날이었다.     


 모녀 여행의 시작은 대학교 3학년 때인가, 부산이었다. 그 뒤로 아빠의 잔소리를 흘려들으며 1년에 두세 번씩은 열심히 놀러 다녔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좋은 여행 친구라고 자부한다. 내가 결혼할 때 엄마는 사위에게 편지로 신신당부를 했다.

 -동아, 결혼해도 초롱이랑 나랑 계속 여행 다닐 거야. 협조해 줘~ 

    

 금요일 저녁, 부산행 KTX는 생각 보다 북적였다. 엄마가 타는 곳에서 문이 열리고 엄마 얼굴을 보자 진짜 여행을 가는구나 실감이 났다. 소시지도, 계란도 먹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아빠가 뭐라 안 했어?"

 "잘 갔다 오라고 용돈도 줬다?"

 "너무 좋네?ㅋㅋ"

     

 언제쯤 체크인하냐고 호텔에서 전화가 왔다. 부산에 내렸을 때는 10시가 다 돼 있었다. 출출한데 갈만한 식당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김밥, 감자 칩, 맥주를 샀다. 12층 호텔 방에서 부산역을 내려다보며 (나만) 맥주를 꽐꽐 마셨다. 

 "이게 얼마 만이야~"

 "기억도 안 나."

 "너무 좋다, 진짜."

 엄마는 챙겨보는 드라마를 보고 나는 드라마 보는 엄마를 봤다. 출발하기 전까지 가도 되나 계속 고민을 했었다. 예전에는 쉬웠던 여행이 이제 너무 어려워져서.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파란 하늘이 활짝 열려 있었다. 부산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처음 영도에 가봤다. 우리가 좋아하는 소품 샵도 들르고 서점에서 책도 한 권 샀다. 비록 마스크는 벗을 수 없었지만 광안리 바닷가에서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너무 좋아. 진짜 짱이야."

 "그치. 나도 좋아."


 부산에서 눈 뜨고 있었던 시간은 12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 날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래도 이런 여행 흔적도 있고 참 좋네.

엄마의 부산 콜렉션


 '너무 좋은'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좋은 걸 좋아한다고 더 자주 얘기해야겠다고. 그래야 상대방이 좋은 걸 알고, 또 좋은 일도 더 많이 생길 테니까. 엄마, 고마워요. 우리 다음에 또 가요.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의 귀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