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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18. 2021

엄마의 사랑 고백

신문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

 얼마 전 내 휴대폰을 바꾸면서 요금이 결합돼 있던 엄마 집 인터넷+TV를 더 나은 거로(?) 교체했다. 기기를 설치하던 날 우리 개가 기사님을 보고 숨넘어가게 짖은 것만 빼고는 순조롭게 신문물 등장. 이런저런 기능을 알려주시고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오오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니야~ (네) TV 켜줘."

 채널 이름을 말하면 척척 틀어준다. 세상 참 좋아졌네. 


 며칠 있다가 엄마를 만났을 때 어떠냐고 물었다. 아빠는 말 걸기가 영 쑥스러운지 굳이 리모컨을 쓴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자꾸 사랑 고백을 한다고.

 "내가 어제 '지니야, 사랑해~' 했더니 이러지 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봤다고 사랑한대."   

 "아까도 사랑한다고 했거든?"

 "아니 자식한테도 안 하는 말을..."

 "그러니까 지니가 그 마음 변치 말래."

 "똑똑하네ㅋㅋㅋㅋㅋㅋㅋ"

 아직 경계심을 풀지 못한 우리 개는 엄마가 지니랑 얘기할 때마다 '뭐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고 한다. 너도 얼른 신문물을 받아들이렴, 똥개야.


2

 지난 주말 남편이 사랑하는 코스트코에 갔다가 계획에 없던 게임기를 샀다. 전부터 사고 싶었지만 할 시간도 없고 가격도 부담스러워서 접었는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

 "운명이야. 사야겠지?"

 "사고 싶으면 사."

 소중히 집에 모셔 와서 충전, 업데이트를 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동물들이 숲에 모이는 그거랍니다. 신중하게 캐릭터 이름을 정하고 너구리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에 들어갔다. 내가 지은 섬 이름이 채택되면서 얼떨결에 주민 대표로 뽑혔다. 

 "여보, 나 주민 대표가 됐어! 멋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임은 대체로 잔잔하다. 오렌지를 따오라는 둥 나뭇가지를 모아오라는 둥 소소한 일거리를 받으면 작은 섬을 뛰어다닌다. 내가 좀 못해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오늘 한 일을 알려줬다.

 "나 DIY 강연에 참여해서 낚싯대 만들었어."

 "뭐?" 

 "물고기 잡으면 보여달래, 너구리가."

 "아...."

 "내가 주민 대표니까 열심히 해야지."

 나는 아무래도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인 걸까. 매일 매일 숲에서 뭐 하고 놀았는지 일기라도 써볼까. 빨리 집에 가서 숲을 뛰어다니고 싶다.


오늘은 엉성한 낚싯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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