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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Oct 19. 2021

남편이 쇼미더머니에 나간다면

드뢉 더 빝


 이번 겨울 이사를 한다. 2년 전 풀옵션 전셋집을 얻으면서 미뤘던 혼수 마련을 앞두고 있다. 남편도 나도 그런 세간살이를 사본 적이 없어서 너무나 막연하고... 약간 신난다.

 "일단 냉장고, 세탁기는 있어야지. 청소기도 좋은 거로 사자. TV는?"

 "난 없어도 돼."

 남편은 일관성 있게 TV는 필요 없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사는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각자 10년 가까이 TV 없는 집에서 자취를 했다. '그래도 명색이 방송작가인데 조그만 거라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잘 보지도 않는데 뭘 사냐는 뜻을 고수 중이다. 그러던 어느 주말, 코스트코에 갔는데 남편이 엄청 큰, 엄청나게 큰 TV 앞에 서 있었다.

 "혹시 살 거면 이 정도는 돼야지."

 "뭐?"

 300만 원이 넘는 TV는 그때 처음 봤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막내 작가 시절 같이 일하던 메인 작가님이 물어본 적이 있다.

 "초롱은 TV 하루에 몇 시간 정도 봐?"

 "저는... 집에 TV가 없어요, 선배님."

 "너, 우리 일이 우습니?"

 나는 원래 TV를 잘 안 봤다. 책을 더 좋아하는 내가 방송작가가 된 건 나를 뺀 주위 사람들이 책보다 TV를 더 많이 봐서였다. 남들이 좋아하는 걸 해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들어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일하면서 의식적으로 영상을 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TV 없이 살던 남편도 나랑 비슷한 줄 알았다. 그런데 완전히 내 착각이었다.


 남편은 아이패드 죽돌이다. 그의 아이패드에는 넷플릭스, 티빙 등 다양한 OTT가 깔려 있고 각종 예능을 섭렵 중이다. 한창 대탈출을 보더니 요즘은 쇼미더머니 시즌이라고 한다.

 "그게... 재밌어?"

 "당연하지. 여보도 볼래? 진짜 재밌엉."

 요즘 우리 집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힙합이 넘쳐흐른다. 남편은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고 있다. 11시도 안 돼서 잠들어 버린 내 손을 잡고 혼자 쇼미더머니를 시청한다. 주말 중에 한 번은 다시 보기도 하니 이렇게 뜨거운 힙합 사랑은 본 적이 없다. 나는 남편에게 제안했다.

 "여보, 그러지 말고 저기 나가 봐."

 "아이, 아냐. 나는 그냥 보는 걸 좋아하는 거야."

 "여보 노래도 잘하잖아. 내가 음... 랩 네임 지어줄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남편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기왕 나간다면 내 남편이 가장 힙 했으면 좋겠다. 뭐가 있을까.

 "너 고기 좋아하니까 미트볼 어때? 아니다, 너무 직설적이니까 비트볼 어때? 둠-치 둠-치치"

 "... 뭐야 그게."

 나의 미트볼, 아니 비트볼은 영 랩 네임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그래도 언젠가 쇼미더머니에 도전한다면 비트볼이 되어줘, 나의 미트볼.


사진 출처

https://program.genie.co.kr/smtm10/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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