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비상
8월이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이틀 정도로 예상하고 시작한 재택근무는 어느덧 한 달을 넘겼다. 출근길에 너무 더워서 빨리 사무실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 집에서도 에어컨을 켜지 않을 만큼 날이 시원해졌다. 시간 정말, 무섭게 간다.
지난 한 달 사이 남편도 간간이 재택근무를 했다. 조그만 우리 집은 어쩌다 보니 일꾼1과 일꾼2의 일터가 되고 말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토요일?"
"아니, 화요일."
"같이 있으니까 주말 같아."
동반 재택근무로 시간 개념도 까먹었는데 평일이 주말 같은 건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니다. 오히려 주말에 일하는 기분이 든다.
남편이 화상 회의를 시작하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다. 혹시라도 카메라에 잡힐까 봐 화장실도 조심조심 가야 한다. 그리고 남편이 진지하게 얘기하거나 뭘 하고 있으면 자꾸 방해하고 싶다. 그건 뭐 남편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불편한 점 말고 본격 재택근무 부작용은 남편이 회사 복귀를 며칠 앞두고 나타났다. 저녁에 씻고 나오던 순둥이 남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남편에게 옆에 누우라고 하고 등을 긁어주며 침착하게 물었다.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 뭐 기분 나쁜 거 있어?"
"아니, 없어."
"여보 얼굴에 다 쓰여 있어."
"그냥... 눈치 보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나 눈치 준 적 없는데??? 왜???"
"알아. 근데 그냥 눈치가 보여. 어딜 가든 여보가 있으니까. 집이 너무 좁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랬구나. 그건... 이사를 해야 해결될 텐데."
"괜찮아. 연말 금방 오니까." (연말에 이사 예정)
지금 우리는 거실에 방 하나 딸린 작은 빌라에 살고 있다. 집에 있으면 화장실 문 닫고 들어갔을 때 말고는 어디서든 서로가 보인다. 자기만의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 나와 함께 하는 재택근무는 스트레스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너무 늦게 들었다. 게다가 남편 책상을 점령한 내 장난감, 스티커, 머리핀 등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이사 가면 우리 방 따로 쓰자. 거기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동숲처럼 내가 꾸밀 거야. 나 그런 거 좋아하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남편은 재택근무를 끝내고 다시 출퇴근을 시작했다. 집에 오면 오늘 하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야불야불 얘기하고 싶다. 역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신혼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