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가
술꾼이 술꾼과 산다는 건 대단한 복지다. 24시간 술친구가 대기 중이니 참 든든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네가 술 좋아해서.... 너무 좋다?"
"엏어헝헝 (이미 취함) 나도 그래 (히죽히죽)"
남편은 정신력을 갖춘 술꾼이다. 12년의 연애, 3년의 결혼생활 중 취한 모습을 본 건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웬만큼 먹어도 흐트러지지 않는데 물론 내가 너무 빨리 흐트러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량은 크게 차이가 나지만 술 몇 잔 들어가면 흥이 나는 건 비슷하다. 보통은 점잖게 시작해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논쟁거리가 있을 때는 서로 네가 더 별로라고 비난하다가 그냥 우리 다 짱이지 깔깔 웃고 잠든다.
우리는 맥주도 좋아하고 소주도 좋아하고 소맥도 좋아하고 막걸리도 좋아한다. 이사를 앞둔 요즘 남편의 화두는 냉장고다.
"김치 냉장고 살 거야."
"아니, 김치를 안 먹는데 김치 냉장고를 왜 사?"
"김치 냉장고에 꼭 김치만 넣으라는 법은 없잖아."
"차라리 술 냉장고를 사. 김치 냉장고는 진짜 아니야."
"막상 사면 너도 좋아할 거야."
일주일에 최소 2회 이상 음주가무를 즐기던 우리에게 최근 암흑기가 찾아왔다. 남편이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한 달은 술을 먹지 말라는 진단을 받은 것. 재택근무를 마치고 회사에 출근한 첫날, 나는 혼자 맥주를 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못 먹는다고 나도 못 먹는 건 아니다.) 그날을 시작으로 남편이 술을 못 먹은 지 열흘이 넘어간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술 없이 막창을 구워 먹었다.
나이를 먹으니 술에 대한 생각도 변한다. 20대에는 매일 흥청망청을 꿈꿨다면 지금은 홀짝홀짝, 조금이라도 좋으니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즐겁게 마시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이 얼른 나아서 같이 '짠'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