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Nov 24. 2021

집 나가던 날

우리 집과의 이별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사는 집 계약 만료와 새집 입주 사이에 한 달 정도 시차가 있어서 넉넉하게 두 달 연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며칠 고민한 끝에 계약에 맞춰 나가기로 했다. 신혼집과의 이별이 성큼 다가왔다.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됐고  곳의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특히 2 사이에 증식한  때문에 집이 좁아 보일까   신경이 쓰였다. 신경 쓰였지만 딱히 방법은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말고 집을 봐주길 바랄 수밖에.     


 문제의 부동산에서 연락이 온 건 지난주였다. 당장 오늘 집 상태를 볼 수 있냐는 질문에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계약할 분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집 상태를 보신다는 건가요?"

 "네, 저희가 확인을 해야 해서요."

 그날은 남편도 나도 집에 없어서 다음날 올 수 없냐고 물으니 그럼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나요? 사진 보고 계약한다는 분이 계셔서요."

 남편이 청소해놓고 기다렸지만 부동산은 약속한 시간에서 1시간이 지나도록 연락도, 오지도 않았다.  

   

 이후 다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호의적일 수 없었다. 이번에는 꼭 시간을 지켜달라고 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 아침 7시, 집을 볼 사람들이 못 오겠다고 해서 오늘도 안 될 것 같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네 알겠습니다

 영혼 없는 답장을 보내고 출근 준비를 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그분들이 다시 온다고 하셔서요. 좀 이따 가려고 하는데요."

 "... 너무 하시네요."

 온다고 했다가 못 올 수도, 못 온다고 했다가 올 수도 있다. 다만 며칠 동안 누적된 화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기분과 별개로 나는 문을 열어줘야 했고 얼굴을 마주한 상황도 유쾌하진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바로 계약을 했고 더는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퇴근하고 전철역에 내리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올겨울에 보는 첫눈이었다.

 "집 나간 기념으로 편의점이라도 갈까?"

 "그럴까?"

 남편과 우산 쓰고 집 근처를 걷다 보니 요 며칠 쌓였던 집에 대한 미움이 눈처럼 녹아내렸다. 2년 전 이맘때 집을 구하느라 고생 중에 짠 나타나 준 우리 집. 우리 힘으로 처음 마련한 우리 집. 신혼의 추억을 잔뜩 만들어 준 고마운 우리 집.

 요즘 출퇴근할 때 한 번씩 물끄러미 집을 올려다본다. 헤어지는 날까지 잘 부탁해, 우리 집.


 사진 출처

 twitter @Miffy_UK

매거진의 이전글 무알콜 신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