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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24. 2022

수험생 마음

공부 빼고 다 재밌어

 언젠가부터 기술이 갖고 싶었다. 방송작가로 10년 넘게 벌어먹게 해준 글쓰기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지만 이런 거 말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 그러니까 자격증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한 게 재작년 연말이다.

 몹시도 산만한 나지만 두 가지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딸 수 있을지 없을지,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모를 자격증을 믿고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어 꾸역 꾸역 일도 공부도 손에 쥐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나는...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는 넋 놓고 TV를 봤다. 생전 안 보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계속 봐도 괜찮아?"

 "이거 언제부터 이렇게 재미있었어?"

 "... 시즌 1부터 재미있었지."

 TV 앞을 떠나지 못하는 나를 남편은 의아하게 쳐다봤다. 또 어느 날 저녁은 하소연 대잔치.

 "여보, 너는 대체 어떻게 참고 공부했어?"

 남편은 지금도 노량진을 마음의 고향으로 꼽는 자칭 프로 수험생 출신이다. 지금 내가 하는 거랑 비교도  되게 힘든 고시 공부를 어떻게  년이나 했을까.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공부하는 건 별로 안 힘들어. 붙을지 떨어질지 결과를 모르면서 버티는 게 힘들지."


 예전에는 공부를 머리로 하는 줄 알았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보니 공부는 몸을 쓰는 일 같다. 팔을 쓰고 눈을 쓰고 허리를 쓰고 엉덩이를 쓰고. 그걸 이제서야 알았다. 그래서 몸한테 좀 잘해주려고 요즘은 영양제도 챙기고 과일도 먹고 술은 멀리하고 있다. (물론 재미는 없다.)

 아까는 엄마한테 얻어 온 사과를 한 알 깎았는데 TV 보면서 먹을까... 하다가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길래 그 앞에 앉았다. 조용한 집 안에 와삭와삭 사과 씹는 소리와 윙윙 세탁기 소리만 크게 들렸다. 멍하니 세탁기를 보고 있자니 이제 하다 하다 세탁기 돌아가는 것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 빼고 정말 세상만사가 재미있다.

 '드디어...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얼른 일어나서 다시 책상 앞에 앉긴 했다. 그런데... 브런치도 사실 시험 끝나면 쓰려고 했는데 또 이러고 있다. 역시 공부 빼고 다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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