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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pr 27. 2022

맛없는 떡볶이

떡볶이는 죄가 없다

 주말이라 흥을 주체하지 못한 게 문제였을까. 눈 뜨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50분 거리 도서관에 갔는데 휴관일이었다. 꼭 빌리고 싶은 책이 있었지만 헛걸음. 갈 때보다 올 때 다리가 무거웠던 건 기분 탓이겠지. 그나마 운동 할당량을 조금 채웠다는 데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해 빠르게 샤워를 하고 아점으로 떡볶이를 해 먹기로 했다.


 작년 말 코로나에 걸리고 이런저런 증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각 손실이었다. 확진 판정을 받고 사흘째쯤 나타났던 것 같다. 배달 주문한 돈가스 덮밥을 질겅질겅 씹는데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사실 맛이 안 느껴지는 걸 모르고 있다가 남편이 알려줘서(?) 알았다.

 "맛이... 안 난다?"

 "에? 그래? 왜? 오? 그러네?"

 "???????"

 "맛이 안 나!!"

 남편과 나는 다양한 장르에서 참 안 맞는데 특히 음식에서 거의 상극이다. 남편은 미각이 예민하고 고오급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혀를 뭐 하러 갖고 있나 싶게 입맛이 둔하다. 편식이 심하지만 먹을 줄 아는 음식은 거의 가리지 않는다. 미각을 잃어도 별 타격이 없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리 담당은 남편인데 그날 내가 팔을 걷어붙인 건 양배추 때문이었다. 몇 주 전부터 냉장고에서 대기 중이었던 양배추를 빨리 해치우고 싶었다. 다만 남편이 평소에 양배추 냄새를 안 좋아해서 많이 넣지는 않았다. 한 주먹 정도? 아닌가, 두 주먹?


 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라볶이 밀키트에 양배추와 양파를 추가했다. 마무리로 깨를 챱챱 뿌리면서 '햐, 진짜 쩐다!' 나의 멋짐에 취했다. 시간은 아점보다 점심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얼른 와~"

 우렁차게 남편을 불러 식탁에 앉혔다. 남편은 기대에 찬 얼굴로 떡을 한 개 집어 먹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양배추 냄새도 나고.. 물을 얼마나 넣었길래 아무 맛이 안 나?"

 "떡볶이 봉지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계량컵으로?"

 "그래..."

 남편은 떡 조금과 라면 몇 가닥을 집어 먹다가 일어서고 말았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힘들게 만든 거 왜 안 먹냐고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연애 12년, 결혼 4년 차쯤 되면 없던 이해심이 생긴다. 남편한테 맛없는 떡볶이 먹으라고 하는 건 나한테 소고기 강요하는 거랑 비슷한 거겠지. 그래, 그럼 이건 내가 다 먹어야지.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내 입에는 나쁘지 않았다. 맛을 모르겠다는 게 더 정확하려나. 아직도 미각이 안 돌아온 걸까. 이 정도면 원래 없던 사람이었을지도. 우물우물 떡볶이를 씹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남편이 물었다.

 "버려도 되잖아. 어머님은 음식 남은 거 바로 버리시던데 뭘 계속 먹고 있어?"

 나의 본가 가족들은 남은 음식을 되도록 재사용하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 나는 편식왕 주제에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한다. 게다가 내가 만든 음식이라면 더더욱. 떡볶이는 결국 내가 다 먹었다.


 고등학교 1학년 문학 시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본 적이 있다. 공책에 끄적이는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던 선생님이 물었다.

 "망실이( 고등학교  별명이다)~ 망실이는  좋아해? 하면 힘이  나는  있어?"

 당시 학교에 적응하느라 죽을 둥 살 둥 하던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떡볶이를 먹으면 힘이 나요."

 "떡볶이! 그렇구나! 떡볶이 선생님도 좋아해~"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 뒤로 나는 다른 음식은 몰라도 떡볶이만큼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먹으면 힘이 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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