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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y 16. 2022

국밥 세 그릇

제3회 결혼기념일

 남편은 집순이를 만나 집돌이가 되었다. 밖에 나가는 걸 참 좋아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집에 있는 게 더 자연스러워졌다. 집순이가 망쳐 놓은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역시 내가 잘 가르쳤다(?) 싶기도 하다.


 연애 시절 여행은 그림의 떡이었다. 공부를 오래   남친과 프리랜서 나부랭이였던 나는 돈도 시간도 넉넉하지 못했다. 10 넘게 연애하는 동안 여행이라고  만한 기억이   꼽을 정도다. 집순이는  불만이 없었지만 그래도 결혼을 하면서 1년에 한두 번은 여행을 다녀보기로 했다. 여행 통장도 만들고 매달 10 원씩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올해로 3년째, 결혼기념일쯤에 여행을 간다. 이번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출발해 부산역에 내리니 11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 배고파..."

 원래 다음날 일정을 위해 일찍 자려고 했지만 위장이 도와주지 않았다. 배고프면 화를 내는 나를 잘 아는 남편은 빠른 검색으로 24시간 돼지국밥집을 찾아냈다. 호텔에 짐을 던져두고 식당으로 향했다.     


 남편은 돼지국밥, 나는 순대국밥을 시켰다. 내가 덜 먹었네 네가 더 먹었네 싸우지 않기 위해 남편은 시원, 나는 대선을 한 병씩 시켰다. 뜨끈한 국물에 소주가 절로 들어갔다.

 "나 이런 거 로망이었어."

 "어떤 거?"

 "새벽에 국밥집에서 소주 먹는 거."

 "좋지, 좋지."

 각자 잔을 채우고 짠을 하며 맛있게 먹다 보니 일주일의 피로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각 1병 하는가배~? 아가씨 대단하네~"

 옆 테이블을 정리하던 이모님께서 칭찬(?)을 해주셨다.

 "오, 나 아가씨라고 하셨어."

 헤실헤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수육 한 접시까지 해치웠는데도 뭔가 아쉬웠다.

 "그럼 새롭게 시작해 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우리는 섞어국밥 한 그릇에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했다. 고기 위에 김치를 올리고 밥도 야무지게 먹어가며 야불댔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냥 안 자길 잘했어! 먹으러 가길 잘했어! 짱이야! 와하하하핳"

 남편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일요일 저녁, 여기가 해운대가 아니라는 게, 오늘은 대선을 마실 수 없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현실 도피해봐야 내일은 월요일이므로 묵묵히 빨래를 하고 저녁을 해 먹고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잠들기 전, 남편에게 물었다.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첫날 국밥이랑 수육 먹은 거."

 "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나도!"

 1년 만에 본 바다도, 10년 만에 간 놀이공원도 국밥 세 그릇을 이기진 못했다. 벌써 다음 여행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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