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우고 잘 화해하기
며칠 전 남편의 휴가가 시작됐다. 나는 이번 여름에도 못 쉬게 되어서(...하) 남편은 아마도 주로 집에 있을 것 같다. 결혼하고 집돌이가 된 남편은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놓고 잘 놀고 있다.
내가 휴가를 받은 건 아니지만 내심 기대하던 게 있었다. 남편이 평소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서 내 몫이었던 집안일이 좀 줄지 않을까 하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빨래가 개켜져 있다든가, 오징어튀김 데워 먹느라 꺼내 쓴 에어프라이어가 제자리에 돌아가 있다든가.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아침에는 좀 화가 났다. 출근 준비하는 사이 다 돌아간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방에 있던 남편에게 이것 좀 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해줄 텐데 어쩐지 말도 하기 싫었다. 어금니 꽉 물고 끝까지 빨래를 널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남편이 방에서 나왔다. 우리는 출근할 때 꼭 한 번 끌어안는 아름다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제는 문화고 나발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당연히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연애할 때는 싸울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많이 싸운다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큰 소리 한 번 낸 적이 없다. 그런데 같이 살다 보니 자꾸만 섭섭하다. 별 게 다 화가 나고 특히 집안일로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된다. 결혼한 지 4년이나 됐는데 이 정도면 우린 그냥 안 맞는 사람들 아닐까.
이참에 한 달이라도 따로 살아볼까 싶어서 회사 근처 월세, 고시원을 검색하며-진짜 비쌌다-헛된 시간을 보냈다. 한껏 쓸데없는 짓을 하고 평소처럼 퇴근했다. 당연히 안 데리러 나올 줄 알았던 남편이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가 눈치 없이 입꼬리가 올라가서 붙들려고 애썼다.
나란히 집까지 걸으며 최대한 건조하게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했다. 남편도 본인의 입장을 설명했다. 어제는 복날이었으므로 몸보신을 하며 토론을 이어가기로 했다. 마음은 이미 좀 누그러진 상태였다. 족발을 포장 주문해놓고 찾으러 가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화해할래?"
싸웠다기보다는 내가 울컥 화를 낸 거지만 서로 기분 나쁜 건 마찬가지였으니. 남편은 피식 웃더니 주먹을 내밀었다. 주먹을 부딪치고 헤헤 웃었다.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정이 가까워져 왔다. 문득 술잔에 작은 문구가 눈에 띄었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거기는 뭐라고 쓰여 있어?"
남편이 컵을 내밀었다.
컵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가 말했다.
"오늘 우리한테 필요한 말 같다."
같이 산 지 4년이나 됐는데, 따위의 말은 이제 하지 말아야겠다. 4년이 아니라 40년이라도 함께 살려면 노력해야겠지. 우리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