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얼마 전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도 얼굴을 알고 집 가까운 곳이라 같이 다녀왔다. 밥까지 둔둔히 먹고 나온 우리는 5천 년 만에 뻗쳐 입은 기념으로 백화점에 갔다. 이렇게 번듯하게 입고 더 번듯한 곳에 가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영 어색했다.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남편이 화장실 간 사이에 조그만 가방 앞에서 서성였다. 막상 사라고 하니 너무 비싼 것 같고 핸드폰밖에 안 들어갈 것 같고 그럼 뭐 하러 사나 싶어서 안 사겠다고 했다.
"아이참, 그럼 저거 내가 사서 써야겠다."
"네 핸드폰은 들어가지도 않을 거 같은데."
"그럼 얼른 골라.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 사야지."
남편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결국 에코백 하나를 골랐다. 요즘 남편이... 이상해졌다.
최근 남편과 토크 중에 이런 소신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좋아하면, 시간과 돈을, 쓴다고 생각해!(취함)"
"갑자기?"
"시간과 돈을 쓴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면 시간과 돈을 쓰지."
"그런가?"
남편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자꾸 뭔가 사 오는 걸 보면.
남편이 휴가 중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며 1박 2일 외출을 했다. 나간 날 오후, 회사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 지금 차 마시러 왔는데 주전자 사갈까?"
"에?"
"주전자를 보니까 안 살 수가 없네."
차를 좋아해서 주전자를 부지런히 사들인 내가 생각났나 보다. 다음날 남편은 자랑스럽게 회색 주전자를 들고 돌아왔다.
"이게 다가 아니야."
"또 뭐?"
친구들을 만나고 회사 숙소에서 자고 온다는 남편에게 지나가듯이 부탁했었다.
"숙소 근처 문구점 가면 짱구가 유치원 버스 탄 수첩 있거든. 나 그거 하나만 더 사다 줘. 너무 귀여운데 한 개밖에 못 샀어."
"응~"
남편이 당연히 까먹었을 줄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서 수첩을 사 온 것. 그런데...
"이걸 다 사 왔어?"
"뭘 말하는지 몰라서 짱구 그려진 건 다 샀지. 리락쿠마도 귀여워서 하나 샀어. 안 까먹고 산 거야.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단다?"
한껏 뿌듯해하는 남편을 따라 그저 웃고 말았다. 왜냐면 남편을 사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