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올해 크리스마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실로 엄청났다. 얼마나 엄청났냐면 10월 중순부터 밤마다 캐럴을 들었다.
"벌써... 이런다고?"
머리맡에서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남편은 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작년 연말 코로나에 걸렸던 남편과 나는 열흘의 격리가 끝나자마자 이사 지옥에 빠졌다. 은행 대출과 입주 관련 각종 공사를 알아보러 다니다가 연말·연초를 다 보내버렸다. 그래서 뭐랄까. 올해는 두 배로 뽕을 뽑아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기분을 내기 위해 다양한 아이템을 모았는데 그중 하나가 어드벤트 캘린더라는 것이다. 숫자가 1부터 24까지 쓰여 있는 상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뭔지 올해 처음 알았다. 한 칸에 한 개씩, 총 24개의 작은 선물(초콜릿이나 장난감 같은)이 들어 있고 12월 1일부터 하루에 하나씩 여는 시스템이다. 다 열면?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 최적화된 아이템 아니겠습니까.
"나 이거 열 때마다 박수 좀 쳐줘."
남편은 12월 내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도 다 못 뜬 얼굴로 박수치며 캘린더 개봉식을 축하해줬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브였던 23일, 올해는 우리 친구 니니를 집에 초대해서 함께 보냈다. 술꾼 셋이 모였으니 약간의 불안감이 있긴 했다.
"정신 차렸는데 25일이면 어떡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 수 있지~"
그리고... 말이 씨가 됐다.
니니는 24일 점심쯤 근 5년 만에 최악의 숙취를 호소하며 물만 한 잔 먹고 집에 갔다. 괜찮은 척하던 남편은 오후 5시가 넘도록 몸져누워 있었다. 그들에 비해 비교적 상태가 멀쩡했던 나는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혼자 보냈어도 이거보다는 나았겠는데...'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숙취맨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보낼 줄이야. 나의 분노는 무려 20일 전에 예약해 둔 케이크를 혼자 찾으러 가며 정점에 달했다. 개떡 같은 크리스마스, 망해라 크리스마스.
내가 얼마나 목 빠지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렸는지 아는 남편이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저녁 뭐 먹을까? 마트에 눈뽀로로 만드는 집게 사러 갈까?"
"안 가. 어차피 망했는데."
"아니야, 지금부터 최선을 다하면 돼~ 가자, 가자~"
크리스마스이브가 5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늦었을 때라는 말이 있지만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도 최선을 다하니 망한 크리스마스를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뭐 그렇게 대단한 걸 한 건 아니고 떡볶이 해 먹고 놀이터 가서 눈으로 오리와 뽀로로를 만든 게 전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잠들기 전 남편이 말했다.
"내일이 진짜 크리스마스니까 재미있게 놀자."
"구래."
보통 브런치에는 남편의 좋은 얘기, 귀여운 모습만 기록했는데 굳이 2022년의 마지막 날 이걸 쓰는 이유가 있다.
오늘 트리와 함께 망했지만 마냥 망하지는 않은 크리스마스를 정리했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금주하자.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