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냐고요?
얼마 전 십년지기 동무 M이 집에 놀러 왔다. M은 사회에서 만난 거의 유일한 친구로 남편과 나의 긴 연애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고 결혼식에 와서 구남친처럼 엉엉 울던 다정한 동생이다. 이사 후 해야지 해야지 했던 집들이를 드디어 하게 됐다.
밖에서 거나하게 1차, 2차를 마시고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마트에서 야무지게 휴지까지 사 온 M은 천천히 집을 둘러봤다. 멍충이 같은 언니의 번듯한 집을 보고 감동해서 또 울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M은 전혀, 예상도 못한 질문을 했다.
"언니, 형부랑 사이가... 괜찮아요?"
"에??? 왜요?" (10년째 말을 못 놔서 존댓말을 씁니다)
"형부 방에 침대가 있길래요."
"음... 그게..."
"그리고 왜 방을 따로 써요?"
"... 형부가 그러자고 한 거예요."
올해 초 이사 직전까지 고민한 건 가전도 인테리어도 아닌 방의 용도였다. 침실을 제외한 작은 방 두 개를 어떻게 쓸 것인가. 나는 용도 별로 나눠서 놀이방, 공부방을 주장했고 남편은 각자 하나씩 쓰자고 했다.
"각방을 쓰자고? 신혼부부가? 감히 각방을?"
"아니, 잠을 같이 자는데 왜 각방이야. 각자의 공간을 만들자는 거지."
"그게 그건데?"
보통 나한테 선택권을 주는, 웬만해선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남편과 몇 날 며칠 토론을 벌였고 나는 남편이 날린 최후의 카드에 무릎 꿇고 말았다.
"나 어릴 때 동생이랑 방 같이 썼거든. 나도 나만의 방이 갖고 싶어."
그렇게 각방을 쓰게 됐다. 남편은 지중해를 콘셉트로 잡고 하얀 책상, 네이비 암막 커튼으로 방을 꾸몄다. 나의 잔소리를 이겨내고 낮잠 잘 때 필요하다며 침대까지 들였다.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방 같은데."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오해를 부른 남편의 침대는 나도 아주 잘 쓰고 있는데 보통 주말에 낮잠은 거기서 잔다. 잠이 솔솔 온답니다.
각방을 써서 좋은 점은 나도 내 방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집에 온 손님들에게 굳이 누구 방이라고 소개하지 않아도 다 알 만큼 우리의 취향이 다르지만 따로 쓰니 싸울 일이 별로 없다. 다만, 싸웠을 때 각방의 대형 단점이 드러나는데 보통은 열어 놓는 문을 들어가서 닫아 버리면 화해하기가 어렵다. 그 문을 여는 데 꽤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나란히 붙어 있는 우리 방 사이 벽을 뚫어서 창문을 내고 싶다. 그때는 남편에게 지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