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자 챱챱
남편은 작년 하반기를 각종 병원에 다니며 보냈다. 일할 때 많이 서 있는 편인데 발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족저근막염이었다. 영혼의 단짝이었던 크록스를 보내고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신발로 바꾸고 약도 꽤 오래 먹었다. 그때부터였던가.
"발 아프니까~ 멀리 못 가~"
나는 퇴근하면 기차에서 내려 큰 언덕 하나를 넘어 집까지 30분 정도 걸어가는데 남편이 마중 나오는 거리가 점점... 점점... 짧아졌다. 이제는 아파트 단지 앞까지만 나와도 감지덕지다.
그다음은 응급실이었다. (<남편의 사생활> 참고) 한동안 술은 멀리하고 음식도 조심하며 몸을 챙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픈 데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목에 뭐가 걸린 거 같고 가슴이 답답해."
그래서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도 끊고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던 밥 먹고 드러눕기도 (<우리 집 송아지 자랑> 참고) 할 수 없게 됐다. 우리의 음주 생활도 큰 타격을 입어서 이제는 불금이라고 달리지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맥주 없이 치킨을 먹었다.
"나 자꾸 여기가 가려워."
얼마 전에는 손등이 벌겋게 일어났다. 남편은 원래 스킨, 로션도 안 바르는 (본인 주장) 상남자인데 아무래도 날이 춥고 건조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며칠을 끙끙거리다가 결국 피부과에 갔더니 예상대로였고 연고를 받아왔다.
"핸드크림도 자주 발라."
"하... 상남자는 그런 거 안 바르는데."
"누가 상남자야."
그날 저녁,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고 손에 뭔가를 들고나와서 보여주었는데...
"나 이거 떨어졌다?"
"???"
그래서 다음 날은 치과에 이를 때우러 갔다. 나는 자꾸만 헛웃음이 났다.
"이렇게 연약하다고!!??"
족저근막염은 많이 좋아졌고 역류성 식도염은 아직도 약을 먹고 있다. 때운 이는 괜찮은 것 같고 약간 잔소리를 하면 스킨, 로션도 잘 바르게 되었다. (얼굴도 손같이 되고 싶냐고 했더니 충격받은 모양이다.) 최근에 강력해 보이는 핸드크림을 하나 샀는데 바를 때마다 혼잣말한다.
"내가 내 손으로 이런 걸 바를 줄이야... 하남자 특... 핸드크림을 바른다..."
"힘내라, 하남자~"
작년 연말에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밖에 없잖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내가 아프면 네가 힘들 거 아니야. 네가 챙겨줘야 하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말아야겠어."
"그래, 아프지 말자."
요즘 남편은 헬스, 나는 링피트에 매진하고 있다. 건강한 30대 후반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