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 반 오징어볶음 반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유명한 중국집이 있다. 십몇 년 전에 부모님과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대단한 맛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입맛이 워낙 둔하기도 하고 솔직히 짜장면이 맛없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짜파게티 한 봉지만 끓여도 너무 맛있잖아요.
우리 집 맛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그 중국집에 가보고 싶어 했다. 주말 점심에 세 번 도전해 봤는데 모두 실패했다. 한 번은 줄이 너무 길었고 두 번은 또 너무 줄이 길었으며 세 번은... 네, 그렇습니다. 최소 1시간 반, 어느 날은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틀 전 남편이 휴가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같이 보내는 평일이었다. 3년 넘게 명절도, 국경일도 평일이면 무조건 출근했던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평일에만 먹을 수 있는 거 먹자!"
"어떤 거?"
"점심 특선 같은 거?"
"OO 반점은 어때?"
"오!"
중국집에 점심 특선 메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평일에는 좀 덜 붐비지 않을까, 한 30분 정도 기다리면 될 거라는 마음으로 출동했다. 식당 앞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20분쯤이었나. 문 연 지 20분 밖에 안 됐는데 이미 줄이...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1시간 20분 정도요."
네 번째 도전도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여보, 우리 이제 그만 포기할까.
아침부터 1시간씩 운동을 하고 온 우리는 배가 고팠다. 남편은 호옥시 실패할 때를 대비해 생각해둔 플랜B를 제안했다.
"예전에 갔던 한정식집으로!"
다행히 그곳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고 제육 반 오징어볶음 반을 주문했다. 가격에 비해 성대한 밥상이 차려졌다.
"우와ㅏㅏㅏㅏㅏ 솥 밥도 나오네! 조기도 있어! 된장찌개도!"
프랑스로 신혼여행 갔을 때 일주일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뼛속까지 한식 파인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일 대낮에 이런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다니. 그래도 가슴 한쪽에 '중국집 네 번째 실패'가 걸리긴 했다.
"오늘도 짜장면 못 먹어서 어떡해?"
"아냐, 여기 오기 잘했어. 진짜 맛있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서 '부자로 사는 법'은 만족하는 마음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못 먹은 짜장면에 아쉬워하기보다 눈앞에 잘 차려진 제육 반 오징어볶음 반을 감사하게 먹으면 우리도 부자 아닐까.
따뜻한 봄날, 평일에 맛있는 점심 특선을 먹고 부자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
photo by 우리 집 맛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