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에는 미처 몰랐던
지난달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남편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한 달은 쉬자. 한 달은 꽉 채워서 쉬자. 그 약속이 무색해지는 데는 겨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줄기차게 자기소개서를 쓰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다. 방송작가로 13년 일한 게 본의 아니게 도움이 많이 됐다. 원고 대신 자기소개서를 이렇게 써재끼고 있네. 스스로 어이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원래 하던 일과 한 번도 안 해봤지만 자격증이 있는 일에 지원을 했고 총 네 번 면접을 봤다. 특히 지난주가 어쩌다 보니 면접 주간이 되어서 3일 연속 면접을 보러 다녔다. 금요일에 마지막 면접이 끝나고 남편과 집 앞에서 소소하게 뒷풀이를 했다. 잘한 면접, 망한 면접을 돌이켜보며 냉삼을 챱챱 구워 먹었다.
"그런데, 다들 결혼했냐고 묻더라?"
"그래?"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옮겼기 때문에 본격(?) 유부녀로서 취업에 도전한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제 확실히 나이가 있어서인지 면접 중에 유독 결혼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4곳 중 3곳에서 그랬다. 내가 하는 일과 혼인 여부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력서에 적지 않아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렀다.
"그래서 결혼했다고 하면 바로."
"애기 있냐고 묻지?"
"어어."
우리는 결혼 전부터 낳지 않기로 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래서 계획이 없다고 말했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좋은 선택 하셨다'고 칭찬한 면접관도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는 않더라고."
"왜?"
"만약에 내가 애기가 있었다면, 계획이 있었다면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
질문한 사람의 의도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별로 알고 싶지 않기도 한다. 다만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단히 사적인 요인들이 나를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 것 같다. 그런 건 왜 물으세요? 라고 되물을 용기도 없으니 인정할 수밖에. 언젠가 또 면접을 보게 된다면 그때는 여유 있게 받아칠 수 있을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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