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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07. 2023

아홉 번째 퇴사

Dobby is free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는 막 회사를 나와 열심히 집을 향해 오고 있었는데 지금 나는 내 방, 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저녁으로 뜨끈한 누룽지를 한 그릇 끓여 먹고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먹어야 하는 신경외과 약을 털어 넣었다. 약 열흘 전 아홉 번째 퇴사를 했다. 


 요즘은 방송 작가도 다양한 고용 형태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13년 내내 프리랜서였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출퇴근이 자유롭고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며 두세 가지 일을 받아서 동시에 할 것 같지만-내 상상 속 프리랜서만 그럴 수도 있다-나는 한 번도 그렇게 일한 적이 없다. 연차가 낮을 때는 야근이나 밤샘이 많았고 여느 직장인들처럼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며 두 가지 이상의 일은 엄두도 못 냈다. 작년 말부터 나는 궁금했다. 내가 정말 프리랜서일까. 그렇다면 내 프리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할 때까지도 쉴 자신이 없었다. 작년에 집을 사면서 큰 빚을 졌고 7년 넘게 쉬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옮겨 갈 때 텀을 두지 않고 연달아 일했다. 단 며칠이라도 일하지 않는 내가 너무 이상해서. 


 쉬고 싶었다. 내가 찾고 싶었던 건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였다. 대체 인력이 없는 팀에서 3년 넘게 일하면서 힘들 때마다 모르는 척했다. 언제까지고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년도 5년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계에 닿았다. 

 "언니는 진작에 쉬었어야 했어요. 누가 7년을 그렇게 일해요."

 "그런가. 나 진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완전 그래도 돼요."

 어제 평일 대낮에 빵집에서 만난 동무는 달달한 브라우니와 짭짤한 감자 빵을 사주며 무조건 쉬라고 했다. 

 "근데 나 너무 불안한 거예요."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 한 달만 딱 눈 감고 쉬어봐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형부 갖다주라며 야무지게 포장해 준 빵 봉투를 받아 들고 집에 돌아오면서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궁금했다. 


 회사 그만두면 하고 싶은 일을 죽 적어 놓은 리스트가 있는데 딱히 다시 펼쳐보지는 않았다. (되게 길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냥 그날그날 되는 대로 살고 있다. 오늘은 미루고 미뤘던 병원에 가서 허리 디스크 약을 받고 엄마랑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 10분 정도 낮잠을 잤다. 책 몇 장 읽고 자격증 공부 조금 하고 친구랑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찾아오는 이 불안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오늘 꼭 기록해 놓고 싶은 실마리를 찾았다. 



 나를 믿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나를 더 먼 곳으로 데려갈 테니까. 내일도 즐겁게 지내보자.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5i-_J_m0yA

tvN <알쓸인잡>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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