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글을 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결혼 과정도 시간이 지나니 가물가물해지더라고요. 기억을 붙들기 위해 기록을 시작한 게 4년 전입니다. 남자친구가 남편이 된 이야기를 야심 차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냈다가 시원하게 떨어지고도 브런치를 접지 않은 게 지금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13년을 쓰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두 달 전 방송국을 나왔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 일을 하게 될지, 다시 방송국으로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읽고 쓰는 일은 직업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가 참 소중합니다.
일을 쉬는 동안 쓴 몇 편의 글을 많은 분이 읽어주셨습니다. 작고 조용한 제 공간에 누군가 다녀가시고 하트도 눌러주시는 게 아직도 신기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 덕분에 제가 여전히 쓰고 있습니다.
저는 시청률에 무심한 작가였습니다. 많이 봐주는 것보다 우리가 열심히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고 자주 우기곤 했는데 그래도 잘 나오면 기분이 좋은 건 또 어쩔 수 없죠. 브런치 조회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적 조회수 100만을 넘을 수 있을까, 이런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진짜 넘어버렸습니다. 이 뜻깊은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제 브런치에서 9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남편에게 글을 한 번 써보라고 제안했습니다. 남편은 이과형 인간이고 평소 글이라고는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몇몇 기념일에 저한테 편지 쓰는 게 전부인 사람입니다. 내가 술술 읽히게 잘 써서 그렇지 이게 어얼마나 쓰기 힘든 건 줄 아냐고 겁을 잔뜩 줬습니다.
어렵게 받아낸(?) 남편의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편이 쓴 신혼의 좋은 점
2019년 어느 날, 초롱이 인터넷에 '신혼의 좋은 점'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는 게 내심 걱정되면서도, 글로 남기면 잊히지 않을 거라는 말이 인상적이라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다양한 소재를 고민하던 초롱은 남편 버전으로 한번 써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나름 에세이 좀 쓴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러자고 했는데, 그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하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신혼은 멀리서 보면 항상 설레고 즐거워 보이지만, 실제로 겪어보면 당황스럽고 어려운 일들도 많다. 실제로 초롱이 쓴 '신혼의 좋은 점'의 약 25%는 서로 싸우거나 혼자서만 속상하거나 누군가가 아팠던 이야기이다. 에세이로 쓰지 못했던 일들도 있으니 그런 일들은 훨씬 더 많다. 모든 일이 다행히 잘 해결되어 글로 쓰였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의 나이만큼이나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우리에게도 함께 산다는 것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제목이 '신혼의 좋은 점'인 이유는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며 화해하고 서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결국 좋은 점만 남기 때문이다. 많은 신혼부부가 행복한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아무 문제 없이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관계가 더욱 믿음직스럽고 단단해진 덕분이 아닐까?
따스한 봄날의 햇살처럼 갑자기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행복도 좋지만, 신혼의 행복은 나와 상대방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더욱 즐겁고 기분 좋은 일 아닐까. 언젠가 서로에게 섭섭하고 속상한 날이 또 오리라 생각한다. 너무 당연히.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걱정하진 않는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될 테니까. 이것이 내가 생각한 신혼의 좋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