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전 과목 양
다시 방송국으로 출근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직에 실패했다는 패배감과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시간에 쫓겨 다녔다. 6개월 만에 다시 일을 하려니 어색한 게 한둘이 아니다. 최근에 출연자를 대신해 대본 리딩을 한 것도 그랬다.
10명 가까운 스태프들이 모여서 실제 방송처럼 대본을 읽어보기로 했다. 원고를 쓰느라 이미 지쳐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어쩌다 보니 나까지 역할이 돌아왔다.
"초롱 작가님이 OOO 읽어주세요."
"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냐면... 낭독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울산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살다가 아빠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울산에 살 때도 부모님이 경상도 출신이 아니셔서 집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 때는 썼었나? 잘 모르겠다. 다만 전학을 와서 내 억양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다녔던 학원은 국영수 수업과 사회, 과학 등을 배우는 전 과목 시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 과목 시간은 사회를 전공한 원장이 가르쳤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식칼을 들고 수업을 했다. 칼날 부분에 빨간 색연필이 칠해져 있었고 '어제도 내가 한 놈 해치웠지' 뭐 이런 드립을 쳤던 게 생각이 난다.
원장은 자주 학생들에게 문제나 지문, 보기를 읽게 시켰다. 어느 날 내가 지목이 됐는데 읽는 걸 듣더니 큰소리로 숨넘어가게 웃었다.
"초롱 양(이름 뒤에 군, 양을 붙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되게 웃기게 읽네?"
이후 원장은 나를 전 과목 시간에 웃긴 억양으로 책을 읽는 초롱 양, 줄여서 '전 과목 양'이라고 불렀다. 그 학원을 6년이나 다녔으니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 과목 양으로 불렸고 학교든 학원이든 발표를 하거나 뭘 읽을 일이 생기면 울렁거리는 증상에 시달렸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다행히 사회에 나와서는 딱히 뭘 읽을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다들 집중하고 있는 회의실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니, 심지어 글을 읽어야 한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보다 어린 후배들도 여럿 있어서 티를 낼 수도 없었다. 읽어야 할 부분을 눈으로 급하게 찾으며 천천히 숨을 쉬었다.
'괜찮아. 난 이제 전 과목 양이 아니야.'
곧 내 순서가 돌아왔고 평소보다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대본을 읽었다. 조용한 회의실을 20년 전 전 과목 양의 목소리가 가득 채웠다. 내 몫을 다 읽고 혹시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사투리도 아닌, 그렇다고 표준어도 아닌 것 같은 억양을 눈치챘을까 싶어 고개를 들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때 눈이 마주친 선배가 한마디 했다.
"뭐야? 왜 잘해? 출연해도 되겠네?"
아유 선배, 별소리를 다 한다는 표정으로 씩 웃고 말았지만 그 순간 나는 20년을 괴롭혔던 전 과목 양과 헤어질 수 있었다. 이제 뭘 좀 읽을 일이 있어도 전처럼 떨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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