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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Dec 04. 2019

세 번 본 영화

그 사이 달라진 것들

 보통 영화를 보러 가면, 잔다. 어둡고 의자도 푹신푹신해서 잠이 솔솔 온다. 원래 영화광이었던 남편은 내가 쿨쿨 자는 모습을 여러 번 보고 영화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좀 억울(?)했다. 

 "영화 보고 싶어."

 "편의점 가서 팝콘 사줄게."

 "아니, 영화관 가고 싶다고."

 "잘 건데 뭐 하러 가. 집에 가서 자."

 "이번에는 안 잘지도 모르잖아?"

 "아니야, 잘 거야. 그럼 나 혼자 봐야 한다고."

 영화관에서만큼은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 우연히 영상자료원에 갔는데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생각나는 게 없어서 허둥지둥하는 내 옆에서 목록을 팔랑팔랑 넘기던 남편이 물었다.

 "<인턴> 볼까?"


 4년 전 개봉했을 때 두 번을 봤다. (그땐 안 잤다. 정말로) 한때 같이 살았던 친구가 딱 내 취향이라길래 같이 보고 너무 좋아서 당시 남자친구(現 남편)랑 한 번 더 봤다. 귀엽고 다정한 드니로 할아버지와 사랑스러운 앤 해서웨이가 어렴풋이 떠올라 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DVD를 받아서 자리를 잡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고 좋았다. 특히 음악에 여러 번 마음이 일렁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모든 매체 중 단연코 책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고집쟁이였다. 여러 형태로 같은 이름의 작품이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책, 책, 책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내가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인턴>도 영화로 만났기에 흠뻑 감동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벤에게 털어놓는 줄스. 이혼할 자신이 없다고 눈물을 보이며 사별한 부인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 벤은 아련한 얼굴로 사랑스러웠던 아내를 이야기한다. 그때 나는 갑자기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깜짝 놀라 입 모양으로 물었다.

 "울어? 왜?"

 "몰라.. 흨흥킇으흨읗"

 눈이 벌게져서 나왔다. 밖이 너무 환해서 창피했다.

 "나 갱년기야?"

 남편이 크게 웃었다. 웃지 마, 난 진지하다고.


 두 번 볼 때도 몰랐던 무엇을 이제 와서 알게 된 걸까. 영화는 그대로인데 아무래도 내가 달라진 것 같다. 결혼하고 보니 세상 모든 이별이 슬프다. 특히 가족, 부부의 헤어짐 앞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네 번 볼 때는 또 다를까. 그때도 같이 봐줘요.


사진 출처

https://cocosteaparty.com/nancy-meyers-interview-the-inter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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