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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Feb 11. 2020

집순이 관찰기

전지적 남편 시점

 와이프는 자꾸 살림에 이름을 붙인다. 딱히 창의적이지는 않은데 청순이(청소기), 공순이(공기청정기), 토순이(토스트), 주순이(전기 주전자) 등이 있다. 실제로 부르기도 하는데

 "청순이 좀 돌려줘."

 이런 식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와이프는 집순이다.     


 새롭거나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연애할 때도 한 번 집에 들어가면 웬만해선 안 나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체 그 조그만 집에서 뭘 하나 싶었는데 같이 살면서 의문이 풀렸다.     

 

 우리 집 집순이는 정말 바쁘다. 보통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책을 본다. 그러다 지겨우면 다른 책을 본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아이패드로 동물짤을 감상한다.

 "뭐 보는 거야?"

 "이거 고양이가 발이 시려서 뒷발에 앞발을 올리고 있는 거야. 엄청 귀엽지?"

 사진을 확대해가며 설명해주면 나는 되도록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집순이가 가장 활력 넘칠 때는 집안일을 할 때다. 신중하게 노동요를 고르고 리듬에 맞춰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한다. 나에게도 소일거리를 나눠주며 넓지도 않은 집을 돌아다니는데 뒷모습도 즐거웁다. 


 이사 오기 전 살던 동네에는 갈만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없었다. 나는 하루에 한 잔씩 스타벅스 콜-드브루를 마시고 싶은 작은 꿈이 있었다. 지금 사는 집에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다. 그런데,

 "나 아직 스타벅스 한 번도 안 가봤다?"

 "왜? 매일 간다 그랬잖아?"

 "집에 있느라..."

 깔깔 웃는 집순이와 같이 웃고 말았다. 내키면 늦은 밤에도 고민하지 않고 집을 나서던 나였는데... 그렇게 집돌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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