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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Feb 25. 2020

고품격 신혼 생활

삶의 질을 높인다는 건

 어느 월요일, 퇴근길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한 잔' 생각이 절로 났다. 마중 나온 남편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물었다.

 "막걸리 한잔할까?"

 술꾼의 마음은 두근거렸다.

     

 마트에서 막걸리 두 병을 사 왔다. 배운 사람들답게 안주는 김치전으로 정했다. 물만 붓고 부치면 완성이라는 간편 식품에 집 김치를 조금 더 썰어 넣었다. 남편이 조리하는 동안 냉장고를 뒤적였다.

 "딸기 먹을까?"

 설에 아버님께 받아온 스티로폼 상자를 열자 하나씩 곱게 포장된 딸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알을 꺼내서 흐르는 물에 씻었다.

 "여보, 우리는 부자야!"

 "아니야. 아빠가 부자야."

 "... 그래요."

     

 혼자 살 때는 아무렇게나 먹었다. 엄마가 해준 밑반찬 두어 가지에 누룽지를 일주일 내내 끓여 먹기도 했다. 냉장실은 텅 비고 냉동실은 얼음으로 꽉 찼다. 먹고사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둘이 살면서 가장 달라진 건 식탁(도 새로 샀군요.) 풍경이다. 기왕이면 더 번듯하게, 더 맛있게 먹으려고 두리번거린다. 며칠 전에는 소시지를 구워서 굳이 귀여운 접시에 담고 머스타드 소스를 뿌리는데 가슴이 벅차올랐다. 케첩도 없이 살던 내가 머스타드라니!     

 

 나를 위해 못했던 일이 '우리'를 위해 가능하다는 게 신기하다. 더 나은 걸 주고 싶은 마음은 얼마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게 만든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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