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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an 07. 2020

비 오는 날 도시락

내일의 좋은 일

 십몇 년 전, 나의 출가를 앞두고 엄마와 이모의 대화 한 토막.

 "자식은 멀리 뚝뚝 떼어놓고 사는 게 편하지. 속이 다 시원하겠네."

 "무슨 소리야, 언니. 내가 쟤 내놓고 사는 건 인생의 도전이라고."

 그 도전은 결혼을 하고 엄마 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마무리됐다. 

    

 오늘 아침은 엄마가 끓인 뜨끈한 미역국이었다.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강아지 옆에 앉아 후식으로 자몽차를 마시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나 도시락 싸갖고 다닐까 봐."

 자꾸 밥때를 놓쳐서 간식거리라도 챙기려고 선반을 뒤적거렸다. 엄마는 언제 사뒀는지 뽀로로가 그려진 플라스틱 통을 건넸다. 과일이나 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출근 준비를 하고 나니 묵직한 통이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뭘 싼 거야?"

 "주먹밥 째끔 했어."

 열어보니 거봉 알 만한 주먹밥들이 조르륵 들어 있었다. 구석에는 김치 몇 조각 들어갈 것 같은 반찬통도.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났다.

 "도시락은 보자기로 싸야 제맛이지."

 안 쓰고 처박아 놨던 손수건 중에 제일 큰 걸 골랐다. <검정 고무신>에나 나올 것 같은 도시락이 완성됐다.

 "데려다줄게. 커피 한 잔 마시고 갈래?"


 어제 시작된 비가 그칠 줄을 몰랐다. 카페 안에서 보는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파이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녹차라테를 주문했다.

 "참 좋네."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며 엄마가 말했다. 맞다. 참 좋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좋다'는 말을 좋아하고 자주 하는 사람이 됐다. 나도 우리 엄마 란이 씨처럼 나이 들 수 있었으면.

 그나저나 배가 불러서 도시락은 종일 가방 안에 있다가 그대로 집에 들고 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어야지. 내일의 '좋은' 일이 벌써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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