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Dec 26. 2019

엄마와 보호자

우리 관계의 역전

 여름이 천천히 내리막을 걸을 즈음 엄마가 아팠다. 평소 병원을 멀리하고 건강에 자신 있던 엄마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며칠을 심란해했다. 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검사 결과를 받아야 했다.

 "그래도 요즘 날이 덜 덥잖아. 병원 나오면 가을이겠네."

 하루하루 다가오는 날짜를 지켜보며 우리는 '작은 다행'들을 그러모았다.    

 

 퇴근하고 병원에 가니 쾌활했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는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 아침부터 병원을 지킨 아빠와 동생을 보내고 보호자 목걸이를 넘겨받았다. 작은 플라스틱에 병실로 들어올 수 있는 바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해가 지면 참을 힘도 잠을 자는지 엄마는 밤새 끙끙 앓았다. 내일은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거짓말쟁이 같았다. 자는 듯 잠들지 못하고 긴 밤을 보냈다. 서서히 밝아오는 창밖을 보는데 매일 오는 아침이 사무치게 반가웠다.

     

 "머리 감고 올게."

 아픈 엄마 앞에서는 피곤한 얼굴도 사치였다. 씩씩하게 샴푸와 수건, 여행용 드라이기를 챙겨 병실을 나왔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한낮처럼 움직이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보고 놀랐다. 콘센트를 찾아 복도를 걷다가 음료수 자판기 옆에 앉아 머리를 말렸다. 멀끔한 척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회사로 향하는데 정신이 몽롱했다.   

  

 늘 보호자였던 엄마와 피보호자였던 나의 관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바람이 조금 불면 날아가 버릴 듯 얇디얇은 보호자 목걸이는 걸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까지 아팠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를 키우면서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디 나의 깨달음이 너무 늦지 않았길.     

 지난했던 가을이 지나고 다시 엄마의 웃음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프고 힘든 보호 대신 애정과 관심만 주고받아요, 우리.


사진 출처

http://www.inbone.kr/intro/tour/index.jsp

매거진의 이전글 비 오는 날 도시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