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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an 14. 2020

디지털 아이러니

어떤 깨달음

 내가 사는 동네는 서울로 가는 전철이 닿지만 자주 다니지는 않는데 한 시간에 한 번 올 때도 있다. 미리 시간표를 확인하지 않으면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전철 시간표를 찍는 모습을 종종 본다. 예전에는 매표소 옆에 필요하면 가져갈 수 있도록 종이 시간표를 비치해놨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가 텅 비어있다. 실시간으로 도착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나온 세상이니 없어도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연말, 친구들과의 송년 잔치에 가져갈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러 갔다. 매장에 들어서니 키오스크(이 단어는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저만 그런가요?) 두 대가 떡하니 서 있었다. 이게 여기까지 들어왔구나. 기계 앞에 서서 화면을 톡톡 누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케이크를 사면 할인받을 수 있는 캐릭터 슬리퍼를 선택하려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뒤에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말씀드려도 되나요?"

 결국 나는 주문에 실패했다. 그런 나를 지켜봤을 점원들은 익숙한 듯 케이크와 슬리퍼를 내주었다.


 '이런 기분이구나.'

 가게를 나와 터덜터덜 걷는데 탄식 비슷한 게 나왔다. 나는 언제까지나 기계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틀리고 말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자주 생기겠지. 사람이 편하자고, 사람을 (쓰는 돈을) 아끼자고 생겨난 것들이 과연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괜히 더 추운 밤이었다.


사진 출처

http://economy.chosun.com/client/news/view.php?boardName=C05&t_num=1360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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