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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y 19. 2020

우리가 노래 가사처럼 살 수 있다면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1년 전 이맘때쯤 화두는 축가였다. 합창부, 응원 동아리 보컬 출신인 남자친구는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매우 신중했다. 지켜보던 나도 몇 곡 추천했지만 발랄하기로 마음먹은 날, 너-무 서정적이라 반려됐다. 


 어느 주말 저녁 우리는 할 일 없이 거실에 누워 있었다.

 "며칠 전에 집에 오는데 그 노래가 나오는 거야. 너무 잔잔해서 보통 그냥 넘겨버리는데 그날은 듣고 싶더라고. 근데 가사가 참 좋더라."

 "좋지, 좋지. 들어볼까?"

 이러려고 장만한 나의 소중한 살림, 블루투스 스피커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더 이상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그저 내 키만 한 소파에 서로 기대어 앉아

 과자나 까먹으며 TV 속 연예인에게 깔깔댈 수 있는 것

 그냥 매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것

 지친 하루의 끝마다 돌아와 꼭 함께하는 것

 잠시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길 들어줄 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네가 늘 있는 것


 슌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노래가 끝나고 남편도 나도 잠시 말이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막연한 바람이었던 가사는 1년을 지나오며 현실이 됐다. 작지만 우리 힘으로 마련한 집, TV 보며 깔깔 웃는 주말, 해장에 좋은 칼국수 먹으러 가는 꽃길, 그리고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는 인사. "잘 자. 사랑해. 내일도 재밌게 놀자." 


 나의 가장 큰 꿈은 지금처럼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아마 10년, 2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첫 번째 결혼기념일, 축하하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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