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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Jun 15. 2020

엄마의 임영웅 토크

조용필 이후, 당신의 연예인

 주말 오후, 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 안에는 강한 비트의 <찐이야>가 흘러나왔다. 필요한 건 다 샀는지, 산 것 중에 뭐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야불대다가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짧은 침묵을 깼다.

 "영웅이 엄마가 미용실을 한다고 하더라고."

 "..........?"

 영웅이가 누구더라, 영웅이 어머님이 엄마 친구인가, 어디서 미용실을 개업하신 거지... 대꾸를 못 하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영웅이가 엄마한테 참 잘하는 것 같아. 영웅이 엄마도 아들이 잘돼서 얼마나 좋겠어. 나 수요일에 또 12시 넘어서 잤잖아."

 너는 왜 말귀를 못 알아듣냐는 눈총을 받고서야 엄마의 원픽, 임영웅 님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요즘 엄마의 토크는 이런 식이다.

     

 TV를 거의 안 보는 나는 미스터트롯 열풍을 실감하지 못했다. 탑7의 이름도 잘 몰랐다. 그러든지 말든지 엄마는 만날 때마다 불쑥불쑥 그들의 근황을 알려준다.

 "찬원이가 집이 대구인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간지 엄청 오래됐어."

 "동원이가 색소폰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대단하더라."

 나의 반응과 별개로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엄마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이런 애정과 열정이 비단 우리 엄마만의 것은 아닌지 한 달 전, 내 친구 니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콘서트 티켓팅이래.

 니니 어머님도 미스터트롯에 푹 빠져 계시기는 마찬가지라 우리는 잠시 고민한 끝에 두 어머니를 콘서트에 보내드리기로 했다. 표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아 니니가 고생을 했다.

 -우리 엄마, 나 신화창조도 못 하게 했는데.

 -이런 날이 올 줄 모르셨겠지.


 10년 넘게 방송국에서 일했어도 딱히 부모님께 자랑스러울 만한 일은 한 게 없는데, 얼마 전 얼떨결에 파워 효도를 했다. 

엄마집 지정 기념물 1호


 용필 오빠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요즘 노래를 부르고 그들을 이야기할 때면 엄마 눈이 반짝반짝 빛나서 참 좋다. 게으른 딸이라 부지런함이 필수인 덕질을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임영웅 님과 미스터트롯을 응원하는 엄마를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사진 출처

http://www.mulgogi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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