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Aug 04. 2020

우리 집 새 친구, 제순이

빨 중에 최고는 장비 빨

 주말의 루틴, 세차를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다음 주 브런치에 뭐 쓸지 알 것 같아."

 "엉?"

 "제순이 산 얘기 쓸 거지? 1. 친구들이 왔다. 2. 제습기가 좋다고 했다! 3. 그래서 나도 샀다, 제습기!"

 "...?!"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제순이 구입기를 써보겠습니다. (보고 있나 송아지)     


 앞이 안 보이게 비가 퍼붓던 며칠 전 동무들이 집에 놀러 왔다. 웬만하면 약속을 취소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지만 우린 웬만하지 않으므로 비를 뚫고 만났다. 포장 음식을 사 와서 먹으며 야불댔는데 창밖으로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쏴아아아아 쏟아졌다.

 "진짜 습하다. 축축해."

 "요새 빨래가 잘 안 말라."

 "제습기 틀어야지! 난 이제 제습기 없인 못 살아!"

 "진짜 좋지, 제습기."

 슈니와 니니는 입을 모아 제습기를 칭찬했다. 제습기 몰까...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내 마음은 궁금함으로 둥실 부풀었다.   

  

 지금 사는 집은 풀옵션이라 들어올 때 가전이라고는 내 돈 주고 산 게 하나도 없다. 남편과 상의 끝에 제습기를 주문하고 나는 신중하게 이름을 고민했다.

 "제순이 어때?"

 "제순이는 어감이 좀 그런데... 뽀송이 어때?"

 "우리 집은 '순' 자 돌림인데... 청순이(청소기), 토순이(토스터), 집순이(나)..."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작명 천재 니니에게 얘기했더니 뽀송+제순=뽀순이라는 기똥찬 이름을 지어주었다.     


 택배는 늘 반갑지만 제순이(이미 입에 붙어버렸다.)를 데리고 온다는 기사님의 문자는 유달리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먼저 퇴근한 남편에게서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제순이 방금 왔어~

 -오오오오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나는 제순이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상한 전개)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다 먹어 치우고 나서야 박스에서 제순이를 꺼냈다.

 "네가 제순이구나아아아~ 눈, 코, 입이라도 그려줄까."

 "... 제순이가 좋아할까?"

 최근 평균 습도 80도를 넘나드는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하는 의미에서 제순이의 전원을 켜보았다. 우우우우웅 큰 소리가 한참 나더니 뱃속에 물이 조금씩 생겼다. 신기하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지는 요즘 제순이는 우리 집의 영웅이다. 아무리 날이 궂어도 제순이만 있다면 당당하게 세탁기를 돌릴 수 있다. 이렇게 가전의 세계에 눈을 뜨는데... 역시 살림은 장비 빨이군요. 다음에는 로봇 청소기 어떤가요, 송아지?


사진 출처

https://lingopolo.org/thai/word/rain?page=0%2C1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송아지 자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