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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Sep 02. 2020

남편은 맨날 등이 가려워

난 너의 효자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는 애교 많고 치킨 좋아하는 남편 한군이 등장한다. 한군만큼 애교 많고 치킨 좋아하는 남편을 둔 나는 이 귀여운 만화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고 가장 공감했던 건 다름 아닌 '등'이었다. 한군은 종종 아내 난다에게 등을 긁어달라고 하는데 어느 에피소드에 소개된 한군의 기본 코스튬은 한 손에 효자손을 들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효자손을 싫어하는 남편이 산다.     

 누구나 어릴 때 습관 하나씩은 갖고 있기 마련인데 남편은 잠들기 전에 어머님이 등을 긁어주셨다고 한다. 그럼 잠이 솔솔 온다고. 습관과 별개로 남편의 등은 시도 때도 없이 가려워서 종종 러닝셔츠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뭐해?"

 "등 가려웡."

 ".... 이리 와."

 다행히 내 손톱은 너무 바짝 잘라서 흰 부분이 거의 없고 손 자체가 작은 편이라 남편 등 긁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넓디넓은 등을 고물고물 긁고 있노라면 남편 얼굴이 헤벌쭉해진다.

 "으흐응흐흫"

 "그렇게 좋아?"

 "엏으흥 너무 좋아. 씨게, 씨게~"

 요청에 따라 씨게 긁다 보면 등에 벌겋게 손톱자국이 남지만 고객님은 좀처럼 만족할 줄을 모른다.

 "등이 시뻘개. 괜찮아? 안 아파?"

 "씨원해, 씨원해~"

 괜히 내 등이 따끔거리는 건 기분 탓인가.     


 그렇다고 내가 24시간 따라다니면서 등을 긁어줄 수는 없으니 나는 여러 번 효자손을 권했다. 하지만 매번 거절하는 남편.

 "싫어. 꼭 손으로 긁어야 해."

 "내가 없을 때 등 가려우면 어떡해."

 "그래도 효자손은 싫어."

 10년 넘게 지켜봤지만 남편의 단호함 포인트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며칠 전 같이 게임을 하다가 화가 나서 등을 홱 돌리고 자버렸는데 남편의 진정성 있는 유감 표시로 어제는 사이좋게 이불을 덮고 누웠다.

 "등 긁어줄까?"

 "응응응!"

 창밖으로 후드득후드득 비가 떨어지고 방 안에 샥샥샥 등 긁는 소리와 뒤섞이니 나도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우리는 잠꼬대인 듯 중얼거렸다.

 "너무 행복해."

 "사이좋게 지내자. 맨날 등 긁어줄게. 잘 자."


사진 출처     

daum 명작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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