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확률 120% 보장!
결혼하고 누가 재정을 관리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경제공동체의 흥망성쇠가 달렸기 때문에 그렇다. 결혼 전 남편 집은 아버님이, 우리 집은 엄마가 경제권을 가지고 계셨다. 보고 자란 환경 자체가 달라서 자칫하면 큰 분란으로 번질 수도.
남편은 물욕이 없고 맛있는 걸 좋아한다. 나는 먹는 데 관심이 없지만 물욕이 쩐다. 정반대의 취향을 가진 우리 중 대체 누가 돈 관리를 해야 하나. 행동 습관, 성격 등을 고려하면 꼼꼼한 내가 관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동의했다. 하지만 문득 남편 입장에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지 않나. 그래서 내린 결론은 공동 관리였다. 각자 수입과 (용돈을 제외한) 지출을 공유하고 남은 돈은 저금하는데 2년째 큰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다.
한 달 용돈은 40만 원이다. 30은 적고 50은 많아서 40이다. 남편은 용돈 대부분을 맛있는 거 사 먹는 데 쓰고 나는 귀여운 거 사는 데 몽땅 쓴다. 남을 것도 부족할 것도 없지만 가끔 고오급 아이템이 눈에 들어오면 108 번뇌를 피할 수 없다.
이 가을, 나는 구두가 사고 싶었다. 가격은 10만 원. 하지만 용돈이 얼마 안 남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촘촘하게 전략을 세웠다.
-1단계. 심각한 척
"여보, 나 할 말 있어."
"뭔데?"
주말에 점심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무심한 척 진지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뒹굴뒹굴하던 남편이 즉각 반응했다.
"이따 얘기해줄게."
"뭐야, 뭔데 그래 또오~"
한껏 복잡한 표정을 슬쩍 보여주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2단계. 불쌍한 척
"여보, 나는 갖고 싶은 게 참 많은데..."
"할 말이 그거였어?"
"참 많은데 지금은 거의 안 사. 옛날에는 대단했잖아. 알지? 그렇잖아, 내가 이렇게 많이 바뀌었어."
남편 주위를 얼쩡거리면서 눈꼬리를 내리고 중얼거렸다. 어깨도 같이 내리면 더욱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문득 내면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내가 어, 한 달에 버는 돈이 얼만데 (얼마 안 됨), 그깟 구두 하나도 못 사고 (이미 많음), 어, 이게 사는 거냐, 이게 나라냐(?)! 구두와 자존심 사이에서 잠시 흔들리다가 예쁜 구두를 신으면 자존심이 팡팡 터질 거라고 믿기로 했다.
-3단계. 귀여운 척
내가 할 얘기가 별거 아니라는 걸 안 남편은 낮잠을 자러 방에 들어갔다. 나는 잽싸게 따라가서 옆에 누웠다.
"내가 등 긁어줄게." (<남편은 맨날 등이 가려워> 참고)
남편 눈꺼풀이 금세 무거워졌다. 열심히 손을 놀리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여보, 나 구두 사도 돼? 용돈 말고 특별 예산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참을 웃던 남편은 흔쾌히 사라고 말하고 잠들었다. 자는 얼굴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남편이 종종 브런치로 사찰하는데 이건 못 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런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요.
사진 출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