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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Sep 15. 2020

엄마의 삼겹살 브런치

가을 아침 풍경

 남편이 출근하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엄마 집에 아침을 먹으러 간다. 엄마 집은 천천히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데 요즘 같은 날씨에는 최고의 산책 코스다. 막 문을 연 카페나 과일 가게를 지날 때는 코를 킁킁거리고 저 구름은 무슨 모양인가 하늘을 살피면서 걷다 보면 금방이다. 서울에 혼자 사는 동안 꿈이었던 귀향이 실감나면서 역시 내려오길 잘했구나 가슴 벅차기도.

 "언니 왔네~"

 문을 열면 자다 일어난 멍멍이가 뛰어나온다. 격한 환대에 화답하기 위해 한 판 요란을 떨고 나면 배에서 와장창 소리가 난다.

 "얼른 손 씻고 와. 식어."


 엄마와 먹는 아침은 메뉴가 좀 남다르다.

 "웬 갈비야?"

 "따님 오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또 어느 날은 떡볶이였다.

 "이 아침에?"

 "너랑 먹으려고 일부러 재료 사놨지."

 예쁜 그릇에 담아 한껏 브런치 기분을 낸 엄마는 너무 귀엽다. 그런데 남다른 메뉴는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쨔잔

 "삼겹살 먹을래?"  

 "엉? 지금?"

 "프라이팬에 한 줄만 구워줄게. 엊그제 사다 놓은 게 있는데 너무 맛있어서 일부러 안 얼리고 냉장고에 넣어놨어. 많이도 안 줘. 딱 한 줄만 먹어봐."

 모닝 삼겹살은 아침 방송팀에서 일할 때 회식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그래서 사진이 없다.)


 몇 년 전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고 시간이 없어서 엄마가 대신 결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의사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이렇게 전했다.

 "딸 채식하냐고 물어보더라."

 "왜?" 

 "무슨 수치가 너무 낮대. 거봐. 고기 안 먹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이제 무조건 먹어야 해."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을 먹다가 문득 생각났다. 엄마는 아직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원래 아침을 잘 먹기도 하지만 엄마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주면 맛있게 안 먹을 수 없다. 부른 배를 두드리면 회사 가기 싫은 마음도 조금 누그러든다.

 "따님 덕분에 나도 잘 먹었네."

 "제가 더 잘 먹었습니다아아아아."

 "또 오세용."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바람을 맞을 때면 작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살면서 제일 큰 수술을 받은 엄마도, 지켜보는 나도 길고 아픈 가을을 보냈었다. 다행히 시간은 흘러 흘러 엄마는 건강을 되찾았고 저녁마다 아빠랑 (가끔은 강아지도 같이) 자전거를 타러 다닌다. 더 바랄 게 없는 요즘이다. 엄마, 내일모레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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