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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Oct 06. 2020

연휴 3일 출근 후기

빨간 날이 싫어요

 막내 작가 시절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퇴근 시간을 모른다는 거였다. 회사 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언제 집에 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날그날 상황과 (메인 작가님) 기분에 따라 "초롱, 이제 들어가."라고 해야 퇴근이었다. 주말에 쉴 수 있는지 없는지도 금요일 저녁은 되어야 알 수 있었다. 약속을 잡을 수 없어서 안 그래도 몇 안 되는 친구가 막내 작가 시절 홀랑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막내도 아닐뿐더러 스케줄이 일정한 뉴스팀에서 일하다 보니 출퇴근이 규칙적이다.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이거만 한 게 없다.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다. 아주 소소하게 아쉬운 점은 뉴스는 결방이 없다는 것. 빨간 날에도 한다는 것. 크리스마스에도 한다는 것.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일이 더 많아진다는 것. 지난 추석 연휴 3일(주말 제외)을 나는 온전히 회사에서 보냈다.     


-9월 30일(水) 연휴 1일 차     

 남편이 아침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힘차게 서울에 왔는데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스타벅스도 문을 닫았다. 버거킹도. 급격히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일하고 퇴근했는데 슬그머니 화가 났다. 부모님 집에 가져갈 포도를 사러 마트에 갔다가 막걸리를 한 병 샀다. 집에 와서 남편이 김치전을 부쳤다.

 "딱 이거 한 병만 먹는 거야."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우리는 막걸리를 금세 비우고 아껴놨던 캔 맥주를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실 게 없을 때까지 마셨다.     


-10월 1일(木) 연휴 2일 차     

 새벽부터 머리가 아팠다. 불과 몇 시간 전의 나에게 험한 욕을 하면서 해가 뜰 때까지 누워 있었다. 천근만근인 몸뚱이를 꾸역꾸역 화장실로 끌고 가 머리를 감았다.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를 남편이 (이럴 줄 알고?) 사다 놓은 짬뽕 밀키트로 시작했다. 다행히 맛있고 배도 불렀지만 마음은 허했다.

 또 회사에 왔다. 여전히 서울 시내는 텅 비어 있었다. 노래 부르면서 걸어도 들을 사람이 없었지만 노래가 나오진 않았다.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면서 원고 한 줄 쓰고 창밖을 보고 또 한 줄 쓰고 물을 마셨다. 그래도 엄마한테 간다는 희망으로 꾹 참았다.

 연휴 앞에 휴가를 붙여 쓴 내 친구 니니가 "내일 벌써 금요일이야." 망언을 했다. 아직도 목요일을 못 벗어난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조만간 보자, 친구야. 

 9시 넘어서 가족들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직도 이번 주가 끝나지 않아서 (사실은 숙취 때문에) 맥주를 한 캔밖에 못 마셨다.     


-10월 2일(金) 연휴 3일 차     

 엄마가 끓여준 해장국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남편이 드디어 금요일이라며 역에 데려다주었다. 그래도 째끔, 아주 째끔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또 한산한 출근길을 거쳐 회사에 왔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대로 연휴를 마칠 수는 없어서,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요즘 나는 오리에 빠져 있는데 귀여운 반려 오리 영상을 찾아보다가 나도 한 마리 들이기로 했다.     


사고 보니 오리가 아니라 병아리라고

 일이 끝나고 동료와 감격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긴긴 주말 보내세요."     


 우리의 바람과 달리 토요일, 일요일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다시 월요일. 북적북적한 출근길에 생각했다. 역시 이게 좋지. 다음 빨간 날은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는데 금요일이네요, 저런.


사진 출처

https://www.lancasterguardian.co.uk/read-this/your-2020-calendar-probably-has-printing-error-heres-why-1350406

https://brand.naver.com/linefriends/products/503352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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