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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Oct 20. 2020

얄궂은 인생

을 받아들이게 될 때

 대학교 2학년 때 내 꿈은 자퇴였다. 적성에 안 맞는 전공을 선택한 건 나인데 밑도 끝도 없이 학교가 싫었다. 고민 끝에 휴학계를 내고 1년 공부해서 편입했다. 자퇴서를 내러 간 날은 몹시도 추웠는데 교문을 나오면서 내가 이 동네 다시는 오나 보라며 뒤도 안 보고 걸었더랬다.


 내가 편입한 다음 해에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가 수능을 다시 봐서 그 학교에 입학했다. 합격 소식을 듣고 축하는커녕 왜 하필 거기냐고 펑펑 울었다. 내가 너무 싫어하니까 이 망할 학교가 이렇게 복수하는구나 싶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2년 만에 다시 그곳에 제 발로 가게 됐을 때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럴 수가.'


 지난 주말 남편과 학교에 다녀왔다. 사실 진짜 목적은 탕수육. 자퇴하고 나서야 알게 된 맛집에 가서 한 판 먹고 캠퍼스 이곳저곳을 걸으며 각자 보낸 시간을 떠들었다.

 "라떼는 말이야. 여기가 공대였다 이 말이야. 컴퓨터 강의를 여기서 들었다고."

 "선배님, 화석이세요? 언제적 얘기하는 거야."

 10년도 더 넘었으니 변한 게 변하지 않은 것보다 많았다. 물론 그대로인 것도 있었는데

 "여기가 술만 먹으면 기어 올라갔다는 언덕이지?"

 "조용히 좀 해줄래."

  쓸데없는 것만 기억하는 남편이여.


 2학년 여름 방학, 학교에 대한 분노가 절정에 달했을 때 두 달 머물렀던 하숙집 앞을 지나는데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여기서 맨날 자기 전에 울면서 빌었어. 다 망하라고. 학교도, 나도, 지구도."

 "그랬어?"

 "응. 근데 그런 시간을 보내서 지금이 있는 거 같아. 이제 싫지 않아, 그때가."

 "다 컸네?"

 "분기별로 올까? 탕수육 먹으러."

 "그러자."


 안 본다, 안 간다, 안 한다. 부정적이고 극단적이던 20대를 지나고 보니 그런 결심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는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혹시 그런 게 있다면 별로 거스르고 싶지 않은 30대가 되었다. 이런 나에게 인생은 더는 얄궂을 수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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