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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ug 26. 2020

회식, 그놈의 회식

모여서 먹으면 더 맛있나요

 막내 작가로 일하는 동안 회식은 빠질 수 없는 의무요, 업무 중 잃은 점수를 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였다. 1년에 한 번꼴로 회사를 옮겨도 어딜 가나 분위기는 비슷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걸 대체 어떻게 견뎠나 싶다.     


 회식, 이 두 글자에 완전히 정이 떨어진 건 3년 차 즈음이었다. 막내 딱지를 뗀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통 방송국은 방송을 '털고' 회식을 하는데 아침 정보 프로그램은 당연히 아침에 방송이 끝난다. 그럼 회식은? 그렇다. 아침에 한다. 

 하룻밤을 꼴딱 새서 방송을 마치고 회사 앞 식당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메뉴는 무려 삼겹살. 태어나서 처음 아침에 고기를 구워봤다. 멍하니 불판을 바라보고 있는데 술병과 잔들이 빠르게 전달됐다. 

 "초롱 작가가 우리 술 상무지~ 내가 잔 채워줄게~"

 부장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잠을 못 자면 소리가 잘 안 들린다. 피로는 이렇게 푸는 거라며 한참을 부어라 마셔라 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회식은 왜 해야 할까. 꼬꼬마 직장인 남편과 토론한 적이 있는데 예상대로 친목 도모를 꼽았다.

 "일하려고 만난 사람들이 왜 친목을 도모해?"

 "친목을 도모하면 일하기가 더 수월하니까."

 "친목이 부족해서 일이 안 수월하면 애초에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꼭 그렇다기보다는..."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주고받다가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회식이 싫은 이유를 꼽기에는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재미도, 의미도 없는 대화. 결혼을 앞두고부터 지금까지 잊을 만하면 듣는 질문이 있다.

 "2세 계획은?"

 '이런 걸 설마 누가...' 싶지만 정말 아무나 물어본다. 방송쟁이들은 오디오가 비면 불안하게 마련이지만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거 왜 묻는 건가요. 딱히 궁금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면 회식이 좋아질까 싶었는데 나는 안 될 모양이다. 일로 만난 사이는 일이나 하고 정 뭘 먹어야겠으면 주스나 마셨으면 좋겠다. 이 소박한 바람을 회사 때려치우기 전에 이룰 수 있을까.


사진 출처

https://www.hankyung.com/thepen/article/97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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