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Aug 21. 2020

매일 매일 기차 여행기

칙칙폭폭 칙칙폭폭

 결혼하고 6개월 만에 주말 부부 생활을 청산하면서 딱 하나 걱정했던 건 최소 3배 이상 늘어나는 출퇴근 시간이었다. 방송국은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 이사를 해도 완전히 서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부쩍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게 됐다.

     

 역 근처에 신혼집을 얻고 본격 장거리 출퇴근이 시작됐다. 그래도 버스보다 덜 힘든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았다. 정기권을 사면 빈자리가 내 자리인데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을 피해 다니다 보니 서서 가는 일은 드물다.

 출발할 때는 논밭의 초록이 창을 가득 채운다.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회사가 아니라 어디 놀러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삭막해지면 슬슬 목덜미가 뻣뻣해진다. 오늘은 아이템 뭐하지.     

 "힘들지 않아요?"

 멀리서 왔다 갔다 하는 걸 아는 동료와 동무들이 종종 묻는다. 당연히 힘들다. 학교 다닐 때도 통학을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 있었는데 10년 세월을 온몸으로 때려 맞은 걸 고려하지 못했다. 한동안은 기차만 타면 잤다. 출근할 때는 서울이 종점이지만 내려올 때는 마음만 먹으면(?) 부산까지도 갈 수 있어서 알람을 꼭 맞춘다.     


 힘든 와중에 장거리 출퇴근의 좋은 점을 꼽자면 책 읽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보통 1년에 서른 몇 권 정도였는데 올해는 반년 만에 마흔 권을 훌쩍 넘겼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해가 될 것 같다.

 또 하나 좋은 건 기차를 타고 내릴 때 보는 풍경이다. 장거리 출퇴근을 막 시작했을 때 역은 그저 회사와 집으로 가기 위한 관문 정도였는데 익숙해지니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눈길을 두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마음과 애틋함이 전해지고 나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번 주는 일이 많아서 각 잡고 브런치에 끄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글도 기차 안에서 쓰고 있다.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다니는 동안은 출퇴근길을 기차 여행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럼 힘든 건 덜하고 좋은 건 더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술꾼의 희노애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