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하지만 눈치가 없어요
"이 근처에서 전시회 같은 걸 하는데 잠시 들렀다 가시면 어떠세요?"
가을의 끝자락을 꽃으로 꾸민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아버님은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니 다 같이 구경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아름다운 날씨였다.
동네 사람이 대부분인 곳에 우리는 너무나 차려입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래도 언제 또 이렇게 입고 만나보겠냐며 입구에서 사진까지 찍었다. 부모님 네 분이 나란히 서시고 내가 카메라를 들었다. 가운데 선 엄마가 어머님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엄마가 왜 저러지?'
나는 엄마를 닮아 스킨십을 싫어한다. (물론 똘이는 예외겠죠) 친구랑 손잡는 것도 영 어색하고 팔짱은 더더욱. 그래서 내심 놀랐다. 까칠한 줄만 알았던 엄마에게도 이런 친화력이 있구나.
똘이와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 뾰족구두를 신었는데 걷다 보니 자꾸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꽃이 예쁜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술까지 마셔서 발목이 여러 번 꺾였다. 멀리서 걷던 이가 어느새 옆에 와서 손을 잡았다.
"아직 안 끝났어."
"난 틀렸어."
꽃으로 꾸며놓은 야외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차려놓은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이미 영혼은 시외로 빠져나가 있었다. 몸이 약하신 어머님은 자리를 잡고 앉아 쉬고 계셨다.
따뜻한 꽃차를 한 잔씩 마시고 이제 헤어질 시간. 각자의 카운터파트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머님께서 엄마에게 검은 봉지를 건네셨다.
"예비 사돈, 내가 아까 산 건데 집에 가서 맛보세요. 별 건 아니고요."
"뭘 이런 걸 사셨어요.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어떡하죠."
갑작스러운 선물에 엄마는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두 분의 실랑이를 몇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극구 사양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아빠 차 트렁크가 갑자기 '위잉'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이게 왜 이래. 왜 열려."
엄마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옆에 서 있던 아빠에게 물었다.
"저거 왜 저래?"
"차 키 들고 트렁크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원래 자동으로 열려."
눈치 없이 스마트한 기능 덕분에 결국 엄마는 어머님의 봉지를 받아 트렁크에 넣었다. 나중에 집에 가서 열어보니 잡곡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좋은 날 봬서 반가웠습니다. 잘 지내시고 또 뵙겠습니다."
길고 긴 상견례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